[기자의 눈]이정은/“한국경찰 이 정도인가요”

  • 입력 2001년 10월 11일 18시 51분


‘군산 윤락가 화재사건’ 2차 재판이 열린 11일 서울지법 559호 법정.

이날 재판에는 평소와는 달리 파란 눈의 외국인 방청객 10여명이 방청석을 채웠다. 이들은 9일부터 열린 ‘성매매 근절 프로젝트 2001’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에 온 국제 인권단체와 성매매 관련 민간단체 관계자들. 포주들이 설치한 쇠창살 때문에 지난해 말 화재 현장에 갇혀 숨진 윤락여성 3명의 유족들이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소송의 재판 참관은 이들에게 있어 이번 심포지엄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였다.

성매매 피해자 여성지원센터 ‘새움터’ 대표 김현선씨(33)에 대한 변호인 반대심문이 시작됐다.

“증인은 12년동안 새움터에서 일해오면서 수천명의 윤락녀들을 상담한 결과 경찰과 포주의 밀착관계, 윤락여성 인신매매와 감금 실태 등을 알게 됐지요?” “예.”

“대부분의 여성들이 도망가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로 경찰을 꼽는 것은 경찰이 포주와 한편이 돼 자신들을 붙잡을 거라 믿기 때문이지요?” “예.”

“군산지역 윤락여성 3명으로부터 과거 경찰서장 등에게 강요에 의한 성 상납과 술접대를 한 적이 있다는 진술도 들었지요?” “예.”

김씨는 “현행법상 윤락여성이 포주에게 진 빚은 무효인데도 경찰이 여성들에게 오히려 빚을 갚으라며 차용증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여성들을 사기혐의로 기소중지해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진술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당시 화재 사건으로 숨진 윤락여성들의 일기장도 정식으로 공개됐다. 감금 상태에서 윤락 행위를 강요당한 젊은 여성들의 처절함이 절절하게 표현돼 있는 이 일기장은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됐다.

이날 재판을 끝까지 지켜본 한 외국인은 일부 한국 경찰의 행태에 대해 충격과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한국의 성매매 실태를 비판, 지적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유엔 등에 제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제 사회에 발가벗겨진 한국 공권력의 부끄러운 모습 앞에서 현 정부가 부르짖는 ‘인권’이 무색하기만 한 하루였다.

이정은<사회부>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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