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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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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역사학자 E.H.카의 정의대로라면 시오노 나나미(64)야말로 발군의 사가(史家)다. 세월속에 묻혀 있는 이탈리아와 로마 유산을 그만큼 생생하게 되살려놓은 인물이 드물기 때문이다.
올해 일본에서 발표된 신작은 시오노 나나미 저작의 한 축인 이탈리아 르네상스서를 한데 묶는 ‘저작집’의 머리에 놓인 책이다. 여기서는 플라톤의 ‘대화록’의 형식을 빌어온 문답식 서술로 주요 르네상스인들의 업적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미 시오노 나나미는 지난 30년간 ‘르네상스의 여인들’ ‘바다의 도시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8권의 르네상스 책을 발표했다. 대부분은 일본과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으면서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전작과 비교할 때 이 책은 저작집을 꾸리기 위한 ‘재탕’이라 할 만큼 내용상의 새로움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르네상스 저작을 아우르는 입문서이자 해설서이며 완결서로서 평가받을 만하다. 평생 르네상스에 매혹된 자기고백과 30여년간 열정을 태워 얻은 진신사리가 담겨있다.
매혹의 동인은 한마디로 ‘앎에 대한 갈증’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근대를 지배해온 서구적 가치관의 붕괴를 목도하면서부터 갈증은 시작됐다. 이를 해갈하기 위해서 중세를 지배해온 기독교적 가치관의 붕괴를 목격한 르네상스인들을 불러들인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저자에게는 르네상스가 더 이상 ‘인문주의’라는 화석화된 역사용어로 규정되지 않는다. 대신에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폭발”이라는 새로운 본질을 부여한다. 이런 시각이 있었기에 수 많은 사학자들이 훑고 지나간 유적 사료 미술품에서조차 그녀는 능히 지혜의 사금파리를 캐낼 수 있었다.
책마다 매번 문체를 바꾸는 나나미의 필력은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특히 앙상한 사료와 유품으로만 전해지는 역사의 인물에 피와 살을 붙여서 동시대 인물로 회생시키는데 탁월하다. 저자의 펜을 통해 마키아벨리의 언어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히고,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가 ‘우아한 냉혹’을 한껏 뽐내며,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같은 예술가들의 비릿한 땀냄새가 코 끝에 전해진다.
그렇다면 평생 르네상스를 연구하면서 얻은 지혜의 사리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이상국가’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문화와 문명 창조의 원동력은 경제력과 자유와 진취성”이라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한가지만 꼽으라면 ‘자유’가 핵심이다. 책 결미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가 현대의 우리에게 남긴 유산을 ‘정신의 자유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라고 정리한다. 그것은 “자기 눈으로 보고, 자리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말이나 손으로 표현하여 남에게 전달하는 생활방식”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대미를 독자에 대한 바람으로 마감한다. “스스로 ‘젊은 천재’가 된 셈치고 ‘거침없이’ 역사의 거장들과 그들의 업적과 대화를 나누라”고.
책을 덮으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말이 여운을 남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힘보다 더 큰 지배력도 더 작은 지배력도 가질 수 없는 존재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