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내기골프

  • 입력 2001년 9월 25일 18시 38분


미국 여자프로골프에서 신인왕은 몇 년째 한국 선수 차지다. 박세리가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을 하자 외국기자들은 ‘한국에 골프장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걸출한 선수들의 활약과 우승으로 우리의 골프에 대한 인식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대중화에도 불구하고 골프로 인한 말썽과 손가락질도 끊이지 않는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평일 골프, 부자들의 내기골프가 비판을 받곤 한다.

▷미국에서도 정치인 골프는 더러 가십거리가 된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걸프전 와중에 필드를 돈 것이 보도되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이라크 공습 기간 중에도 회의가 끝나면 골프채를 잡고 휘둘렀다. 일본의 모리 요시로 전 총리도 고교실습선 침몰 소란이 벌어진 가운데 내기골프를 계속했다 해서 물의를 빚었다. 돈과 시간이 드는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이 일본서도 아주 사라진 건 아니어서 모리 전 총리가 혼이 났다.

▷우리 정계의 중진들이 A골프장에서 ‘홀인원 내기’로 1000만원 상금 운운했다가 욕을 먹은 일이 있다. 그 자리에서 1000만원대의 골프채 선물 소리도 나와 가십거리가 되었다. 국회 회의장에서 스윙 요령 메모를 펼쳐 놓았다가 망원카메라에 잡혀 망신당한 의원도 있다. ‘국회에선 골프 얘기, 골프장에서는 정치 얘기’라는 비아냥도, 정치인 골프를 곱게 보아주지 않는 단면이다. 정치인에 대한 사시(斜視)가 골프와 겹쳐져 더 비뚤어지게 보는 것도 같다. 정치의 품질은 형편없는데 골프에나 빠져 몰려다니느냐는….

▷골프장마다 내기골프를 삼가라는 경고가 붙어 있다. 그만큼 내기가 성행한다는 증거다. 미국에선 돈 잘 잃는 골퍼를 비둘기(피전)라 하고, 일본 사람들도 오리(가모)라고 하는 걸 보면 내기는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친선을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자극하는 작은 내기는 그런 대로 괜찮다는 이가 있다. 도박성 규모가 문제라는 얘기다. 골프장을 여러 개 가진 박순석씨(60)가 수억원대 내기골프 혐의로 검찰에 적발되었다. 몇 년 전 상습적인 내기골프로 걸려든 프로골퍼 사건과 함께, 골프를 먹칠하고 손가락질 받게 하는 사건들이다.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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