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용병문제, 해법은 무엇인가

  • 입력 2001년 9월 25일 10시 49분


지난 9월 8일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는 이사회를 열고 2002 시즌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지난해와 같은 3명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하여 재계약시 연봉 인상 상한을 현재 5%에서 10%로 상향조정하고, 계약의 투명성을 위해 선수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계좌추적 동의서를 제출한 선수에 한해 선수 등록을 승인하도록 했다. 시즌 중 외국인 선수 교체도 1명으로 제한하고, 시즌 중 계약이 해지되는 외국인 선수는 자유계약선수로 풀어 다른 구단으로 옮길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국내 선수의 출장 기회를 늘린다는 취지에서 현재 26명 엔트리를 27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일단 계약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계좌추적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한 것과, 시즌 중 계약이 해지되는 외국인 선수를 자유계약으로 풀도록 한 것은 긍정적이다. 이로써 외국인 선수 연봉과 관련된 잡음을 없앨 수 있을 것이며, 올 시즌 벤 리베라를 임의 탈퇴 처리한 삼성 라이온즈처럼 규정상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줄어들게 됐다. 계약의 투명성과 관련해 외국인 선수와의 이면계약을 막기 위해 선수와 그 부인의 외국인 등록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제출하도록 한 제도가 이미 존재했음을 감안하면, ‘실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계약의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과 연봉 상한을 200,000$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조금 다른 얘기다.)

그러나 프로야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선수들과 아마야구측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감스럽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외국인 선수 문제와 관련하여 이해 당사자인 선수들과 아마야구측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엔트리를 확대했다고는 하지만, 이 조치가 외국인 선수의 출장기회를 제한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국내선수들의 ‘반발 무마용’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KBO 이사회의 밀실 행정과 전횡, 그리고 선수를 동업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신문지상(紙上)을 통해서도 많은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선수협 주축 선수 방출을 결정한 것도 이들이며, 국내 선수들과 야구계의 반발에도 아랑곳 않고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3명으로 확대한 것도 이들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자 이사회도 소집하지 않고 비밀합의로 보유 한도 확대를 결정하기도 했다. KBO 실무진이 제안한 양대 지구제를 단지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양대 리그제로 바꾸기도 했으며, 매년 ‘멋대로’ 포스트시즌 진출 규정을 바꾸기도 한다. 이번 결정 과정 역시도 과거 KBO 이사회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 KBO 이사회의 전횡을 막고, 선수들도 프로야구의 주인공으로서 당당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다시 외국인 선수 문제로 돌아와서, 내년 시즌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가 3명으로 유지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폐지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외국인 선수 고용 문제를 둘러싼 마찰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 선수 고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만큼, ‘어차피 내년에는 그대로 갈텐데’라며 덮어두기 보다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칼럼에서는 ‘외국인 선수는 몇 명이 적당하다’는 식의 결론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인 선수 문제는 이해관계 당사자인 선수-아마야구-프로구단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토론하는 ‘정치적인’ 과정을 통해 결론을 얻어야 할 문제이지, 수학 문제처럼 정확한 풀이과정과 답이 존재하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칼럼에서는 외국인 선수 문제를 둘러싼 이슈에 대해 필요한 설명과 나름대로의 견해를 더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한 번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1. 팀간 전력차 해소

외국인 선수 세 명이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선수 육성에 대한 부담도 거의 없어, 구단으로서는 단기간 내 외국인 선수를 통한 전력 향상을 꾀할 수 있다. 이는 외국인 선수 제도가 갖는 최대 장점이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0.224의 형편없는 승률을 기록한 SK 와이번스가 올시즌 4할대 중반의 승률을 기록하며 프로야구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에는 틸슨 브리또, 호세 에레라 그리고 페르난도 에르난데스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기아, SK가 외국인 선수 고용 한도 축소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외국인 선수 제도가 팀간 전력차 해소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2. 흥행 및 경기력 향상

두산 타이런 우즈는 출중한 기량과 함께 한국 문화에 완전히 적응하며 4년째 한국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잠실벌에서 “우~즈"를 연호하는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팀 동료 심정수, 김동주의 기량 향상이 눈부시다.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내가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것을 보고, 나를 닮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김동주는 이제 마음대로 장타를 날릴 수 있게 되었으며, 타율이 그 증거이다. 심정수 역시 대단한 기량 향상을 이뤘다”며 외국인 선수 제도가 국내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베이스볼투아이, 2000년 10월 21일) 우즈의 주관적인 견해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은 국내선수에 비해 뛰어나며 이들의 플레이가 한국 프로야구가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3. 위화감 조성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선수(24명) 1인당 평균 연봉액은 2억2,332만원으로 국내선수(184명) 평균 연봉액 5,725만원의 3.9배에 달한다고 한다. 외국인 선수들의 페이가 ‘쎈’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선수 평균과 이들의 연봉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온당한 비교를 위해서는 외국인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 간의 기량차도 고려해야 한다. 옵션과 체제비, 스카우트 비용 등 비공식 비용까지 포함하면 외국인 선수 대비 국내선수의 연봉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는 견해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같은 논리라면 국내 선수들의 계약금, 스카우트 비용, 구단이 선수 육성에 사용하는 비용 등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외국인 선수들의 연봉은 국내 선수들에 비해 많고, 이것이 위화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위험 부담을 안고 태평양을 건넌다. 연봉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리스크에 대한 보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물론 진짜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은 뒷돈으로 수십에서 수백(?)만불 이상 쏟아 붇는다는 소문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다. 만약 이러한 거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규정을 어기고 위화감을 조성한 구단은 반드시 지탄 받아야 할 것이다.)

4. 외화 낭비

외화 낭비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일단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외국인 선수들은 국내 선수에 비해 많은 연봉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외화 낭비로 몰아붙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외국인 선수들이 연봉을 받는 이유는 한국의, 정확히는 소속 구단의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박찬호가 LA 다저스로부터 연봉을 받는 이유는 박찬호가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다저스 팀 성적이 향상되고, 관중이 늘어나고 중계권료가 늘어나고, 캐릭터 판매가 증가하는 등등 다저스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 즉 다저스의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들은 연봉에 따라 정당한 세금을 한국에 납부한다. 세금과 일정 생활비를 제외한 대부분-대략 연봉의 40-60% 정도-을 고국으로 송금하더라도 200-300만불이 한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해도 무방하다.

또 다른 측면에서 외국인 선수 교체가 빈번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외화 낭비가 심하다는 주장이다. 이 견해는 타당하다. 빈번히 교체되는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에서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 구단의 스카우팅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외국인 선수 고용 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때문에 시기상조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프로야구 구단이 스카우팅 능력을 향상해야 하는 것을 시기상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국내 무대에 진출하는 외국인 선수의 기량이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에서 얻은 경험은 트레이드나 신인 지명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그간 구단들이 ‘또 바꾸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외국인 선수를 뽑아왔다면 시즌 중 외국인 선수 교체를 한 차례로 제한한 것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 규정은 뜻밖에 국내 선수들의 출장 기회를 늘릴지도 모르겠다.)

5. 야구 저변이 축소된다

외국인 선수와 관련하여 가중 중요한 문제는 “야구 저변이 축소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선수 수요-공급 구조를 살펴보면 선수 수요-공급 구조가 상당히 안정적이며 수요-공급 규모가 대단히 소규모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실업 야구는 고졸-대졸 선수들에게 프로 이외의 ‘대안’으로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있으며, 제2리그는 꿈도 꾸기 어렵다. 그런데다 고등학교-대학교에서 배출해내는 선수와 프로에 입단하는 선수 숫자가 작기 때문에 구단에서 고용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는 세 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아마 야구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나름대로 뛰어난 타격 능력을 보유한, 그러나 다른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은 전혀 없는 대졸 1루수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실업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아졌다. 게다가 엘리트 위주의 학원 스포츠는 야구선수로서가 아닌 사회인으로서 선수들의 능력을 거의 마비시켜 버렸다. 때문에 현재 고등학교 재학중인 선수는 물론 야구를 직업으로 삼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즉 공부를 포기하고 야구에 모든 것을 거느냐 마느냐를 결정해야 할 어린 야구 선수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상당한 위기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러한 위기 의식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면 많은 야구인들의 지적대로 프로야구의 뿌리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저변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지만 현직 프로선수들에게도 위기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우즈의 경쾌한 홈런과 퀸란의 그림같은 수비가 국내 선수들의 생계와 한국 프로야구의 미래를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애초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취지를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나름대로 견해를 더했다. 재차 강조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구단은 선수들 그리고 프로야구의 젖줄인 아마 야구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한국 프로야구의 미래를 위해 토론하라. 그리고 “무분별한 용병 수입보다는 국내선수를 제대로 대우하고 야구장을 현대화하는 등의 방법이 오히려 야구인구의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선수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라. 만약 서로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의 처지에 대해 이해한 다음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정당하다. 선수들의 이해와 양해가 전제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KBO 이사회의 일방적인 결정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