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속보이는 문화관광부

  • 입력 2001년 9월 23일 20시 43분


19일 오전 10시경. 동아일보사 편집국 문화부 팩스에는 문화관광부발 보도자료 1건이 들어왔다. ‘김한길 문화관광부장관 득남’이라는 제목에 ‘김 장관의 부인인 탤런트 최명길씨가 18일 오후 2.8㎏의 둘째아들을 순산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자료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최씨가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출산했음을 강조하기 위해 ‘고려대 구로병원’을 굵은 글씨로 표기한 사실일 것이다. 이 병원은 19일 장관직에서 물러난 김한길씨가 민주당 후보로 10·25 재·보선에 출마하는 서울 구로을 선거구에 있다. 김씨 부부는 출산 직전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지역구에 있는 한 아파트로 옮겼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다시 말해 지역구에서 출산했다는 점을 강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본보 문화부의 한 기자가 문화관광부 관계자에게 전화로 물었다.

“이런 자료를 꼭 공식문서로 언론사에 보내야 합니까?”(기자)

“현직 장관의 부인이 아이를 낳은 건 처음인데요.”(문화관광부 관계자)

“출마 지역구 내의 병원을 굵은 글씨로 쓴 건 또 뭡니까?”(기자)

“…….”(문화관광부 관계자)

아무튼 문화관광부의 ‘전략’은 성공적이어서 일부 매체는 위의 내용과 함께, 김 전 장관의 부인 최씨가 출연했던 영화 ‘장밋빛 인생’(1994년)의 배경이 구로을 선거구에 속한 가리봉동이었다는 옛날 얘기까지 보도했다.

소동 이틀 후인 21일 한나라당은 공영방송이 10·25 재·보선에 나서는 여권 후보의 사전선거운동을 대행했다며 진상을 가리겠다고 나섰다. 김 전 장관은 ‘보도자료 소동’ 외에도 19일 MBC ‘섹션TV 연예통신’이 부인의 출산을 전하는 과정에 2분여 동안 등장했으며 동대문을 선거구의 민주당 허인회 후보는 같은 날 KBS 라디오 ‘경제가 보인다’에 출연해 8분동안 전화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다.

이번 재·보선은 정부 주도의 ‘언론 개혁’ 드라이브 이후 열리는 첫 국회의원 선거다.

이승헌기자<문화부>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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