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膺 懲(응징)

  • 입력 2001년 9월 16일 18시 38분


膺-칠 응 懲-징계할 징夷-오랑캐 이

圈-테두리 권 懷-품을 회端-끝 단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文化的인 自負心(자부심)이 대단했다. 소위 ‘中華思想’(중화사상)이 그것으로 내 나라만이 최고의 文化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제외한 사방의 나라는 모두 미개한 ‘오랑캐’로 여겼다. 곧 동서남북 사방에 따라 제멋대로 오랑캐 이름을 만들어 각기 東夷(동이) 西戎(서융) 南蠻(남만) 北狄(북적)이라 하고는 이를 통틀어 四夷(사이)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졸지에 ‘東夷’(동쪽 오랑캐)가 되고 말았다.

그 뒤 16세기에 들어오자, ‘地理上의 發見’으로 중국 땅을 밟는 서양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오랑캐의 4분법으로는 그들에게 붙일 마땅한 이름이 없었다. 가만히 보니 얼굴은 밀가루를 뒤집어 쓴 듯 하얗고 눈은 파란 데다 키가 장대만 하니 이건 영락없는 ‘귀신’ 아닌가. 그래서 ‘바다를 건너온 귀신’이라 하여 ‘洋鬼’(양귀)라고 불렀다.

이런 고약한(?) 전통은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됐다. 孟子(맹자)같은 聖人(성인)조차도 中華(중화)와 오랑캐는 엄격히 구분했을 정도다. 다만 그 구별이 종족(혈통)이 아닌 文化에 있었던 만큼 오랑캐라 하더라도 일단 중국의 文化를 받아들여 同化가 되면 같은 中華圈(중화권)으로 여겨주는 包容性(포용성)을 발휘했다.

문제는 오랑캐가 끝까지 중국의 文化를 거부할 때다. 懷柔(회유)를 해도 안되면 그 때는 마지막 방법, 곧 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膺懲’이라고 했다.

여기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孟子에 전해져 오고 있다. 陳良(진량)은 본디 남쪽 楚(초)나라 사람이었다. 당시 楚는 미개지로 오랑캐로 불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中原(중원)에 留學(유학)와서 儒學(유학)을 배워 文化的으로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 물론 孟子는 그를 칭송했다.

그런데 陳良의 제자였던 陳相(진상)은 영 딴판이었다. 스승이 죽자 그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異端者(이단자) 許行(허행)을 섬겨 儒道(유도)를 훼손하고 있지 않은가. 孟子의 눈에는 그 같은 행적이야말로 오랑캐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수십 년 스승을 배반하고도 부족해 聖人의 道를 파괴하고 있으니 이런 자들이야말로 왜가리떼 같은 야만인이 아닌가. 그 같은 오랑캐에게는 오직 한 가지 방법, 곧 膺懲만이 상책이라고 주장한다.

곧 膺懲이라면 文化的으로 낙후된 야만인을 벌주는 한 방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못된 자를 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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