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불꽃같은 삶 '나는 내가 아니다-프란츠 파농 평전'

  • 입력 2001년 9월 14일 18시 35분


파농의 자화상
파농의 자화상
나는 내가 아니다-프란츠 파농 평전/패트릭 엘렌 지음/304쪽 1만1000원 우물이있는집

자기 시대를 격정적으로 살아낸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름답게 살기가 참으로 어려웠던 시대였지만 그래도 조금씩 아름다워지려고 영혼과 육체의 밑바닥까지 아낌없이 퍼부었던 그들의 삶은 ‘창조적 불복종의 삶’이다.

내가 프란츠 파농(1925∼1961년)을 처음 만난 것은 1984년이었다. 세상이 아름다워지기를 꿈꾸던 시절의 어두운 골방에서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의 저자로 파농을 만났던 것이다. 파농의 언어들은 가뭄으로 갈라진 논처럼 바짝 말라있던 내 영혼을 흠뻑 적셔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기억마저도 아스라하게 묻혀가고 있을 즈음 다시 파농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이 책 첫장을 펼치면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느꼈다. 눈을 감고 자기의 운명과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파농에게 경외를 바친다.

그리고 파농의 검은 얼굴과 검은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한다. 흑인이면서 백인으로서의 교육을 받았던 식민지 지식인의 비애와 열정이 물결처럼 전해진다. 유아기에는 흑인이면서도 흑인인 줄 몰랐고 청년기에는 튀는 감수성과 열정으로 자유를 위해 살았고 마침내 성인이 되어서는 ‘검은 피부 흰 가면’의 정체성 속에서 고뇌했던 인간, 프란츠 파농.

평전을 펼치고 일단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하면 “나는 내가 아니다”라고 절규하는 자기 부정의 반역성과 열정이 숨결처럼 친근하고 재미있게 전달되어 온다. 카리브해 연안의 프랑스 식민지인 마르티니크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세계의 지성의 삶은 말 그대로 열정이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혁명가였지만 파농도 진하게 연애를 했다. 심지어는 이미 끝난 연인과의 관계에서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사랑이 끝났는데도 헤어진 연인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파농은 책임을 회피하려 들지 않았다. 사랑의 고뇌를 겪어보지 않은 인간이 어찌 혁명을 꿈꿀 수 있을까? 위대한 지성의 연애를 읽는 재미는 참으로 쏠쏠하다.

파농은 마음보다는 몸을 믿는 사람이었다. 살롱 혁명가들, 까페나 살롱에서 입으로만 혁명을 논하는 지식인들을 파농은 아주 싫어했다. 담론의 울타리에 갇혀 마음 속에서 혁명을 꿈꾸기보다는 먼저 몸을 던지고 보는 행동주의 지식인의 삶의 갈피와 무늬가 평전 곳곳에 아름다운 문장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발자크 평전’이나 ‘체 게바라 평전’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파농이라는 한 인간의 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또한 감동을 담은 문장들이 군더더기 없이 배치되어 어느 한 군데 지루한 데가 없어서 좋았다.

창조적 불복종의 태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열정적으로 살다가 그토록 열망했던 알제리 독립을 3개월 앞두고 36살이란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파농. 지금도 세계 지성인들의 가슴에 살아 있는 위대한 영혼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더듬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가을이 행복해지리라. 원제 ‘Frantz Fanon ; A spiritual biography’(2000년)

정 도 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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