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美테러 원인은? 대참사 계기로 본 관련책

  • 입력 2001년 9월 14일 18시 35분


“신의 도시(뉴욕)에 거대한 번개가 치리라, 두 형제(세계무역센터)는 혼란속에 갈기갈기 찢어지고, 요새(미국)가 아픔을 겪는 동안, 위대한 지도자(부시 대통령)는 굴복하고, 큰 도시가 타오를 때 세 번째 큰 전쟁이 시작되리니.”

미국 연쇄테러 대참사의 충격은 잠자던 노스트라다무스마저 깨워냈다. 네티즌들은 ‘정확한 예언’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출처 불명인 유언비어다. 사상 초유의 테러사태의 원인과 진상을 냉정하게 판단하려면 중세 예언자의 유령을 불러올 일이 아니라 테러나 미국의 대외정책, 국제정치역학 관련서들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테러리즘〓국내에서 테러리즘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는 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번역서조차 변변한 것이 거의 없다. 개론서로는 순천전문대 최진태 외래교수의 ‘테러, 테러리스트 & 테러리즘’(영문화사·1997년)가 있다. 이 책은 테러의 유형과 주요 사건, 각 지역별 테러리스트 단체 등 기초 정보를 담았다.

하지만 이책은 ‘선전 선동’에서 ‘대량 살상’으로 바뀐 테러 패러다임의 변화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회색 전쟁(Gray War)’으로 불리는 이번 미국 연쇄테러와 같은 ‘뉴 테러리즘’의 양상을 다룬 외국책으로는 미국 국방성 등의 후원을 받는 미국의 민간연구소 랜드(RAND)가 발간한 ‘뉴 테러리즘에의 대응(Countering the New Terrorism)’(이안 O. 레서 외·RAND·1997년·국내미번역)이 꼽힌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등이 쓴 ‘예방적 방위전략’(프레스21·2000년)은 미국 영토내에서 ‘재앙적 테러’가 상시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름의 방지책을 제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팍스 아메리카나〓이번 테러의 진원지는 미국의 패권주의(Pax Americana)까지 소급될 수 있다. 화를 부른 미국의 오만이 잘 드러난 책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삼인·2000년)이다. 냉전이후 세계라는 장기판에서 이슬람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일본 같은 ‘말’을 어떻게 잘 움직여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킬지 ‘훈수’를 두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브레진스키의 바람과는 어긋나버렸다. 미국은 ‘차’ ‘포’를 휘두르듯 혼자 독주하다 ‘졸’에게 외통수로 걸린 꼴이다.

미국의 안하무인식 대외정책의 위험에 대해 이미 여러 학자가 경고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미국 대외정책 ‘저격수’인 노엄 촘스키를 꼽을 만하다. 촘스키는 유대인출신으로 한때 이스라엘 건국운동에도 참여했지만 이스라엘 중심의 미국의 중동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의 저서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이후·2000년)는 겉으로 자유와 민주를 외치면서 뒤로는 착취와 분쟁을 조장하는 미국의 ‘두 얼굴의 역사’를 집대성한 역작이다.

위의 두 책이 좌우 편향이라면, 국내 연구서인 ‘21세기 미국패권과 국제질서’(오름·2000년)는 냉정한 시선을 견지한다. 논문 모음이라는 딱딱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20명의 국제정치학자들이 ‘미국은 21세기 패권국으로서 능력과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라고 제기한 의문은 일반인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국제 정치역학〓인류사는 이번 테러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조지프 나이의 ‘국제분쟁의 이해’(한울·2000년)는 전쟁과 분쟁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혜안을 제공한다. 고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부터 1991년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국제분쟁의 역사를 국제정치 이론을 접목시켜 설명했다. 이번 미국 테러사태와 관련해서는 ‘초국가적 위협’ ‘초민족주의’ 등의 개념을 통해 21세기의 ‘신세계질서’를 탐구하고 있는 마지막 장을 주목해 볼 만하다.

▽문명 충돌인가, 공존인가〓이번 테러를 ‘미국 대(對) 이슬람’ 구도나 ‘문명간 전쟁’으로 보려는 시각이 강하다. 이런 관점의 원조는 냉전후 세계 질서를 ‘서구문명 대 중화-이슬람 연합문명’의 대결로 본 새뮤얼 헌팅턴의 대표작 ‘문명의 충돌’(김영사·1997년)이다. 아랍 관련 분쟁 때마다 ‘모범답안’처럼 인용되는 이 책에 대해서는 “과거의 정치·군사적 냉전을 문화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않다.

반(反) 헌팅턴론의 선봉에 선 저서로는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푸른숲·2000년)이 대표적이다. 평화를 연구하는 독일 민간연구소(HSFK) 소장인 저자는 여기서 “국제분쟁은 문명간의 대결이 아니라 인종과 영토 갈등이 더 큰 원인”이었음을 보여주면서 헌팅턴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나아가 역사적으로도 ‘충돌’이 아니라 ‘공존’과 ‘대화’만이 세계 공동체의 해결책이었음을 보여주면서 균형감각을 제공한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21세기테러 위협 소설속에 생생

21세기 테러리즘의 위협은 이론서보다는 소설에서 더욱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번 테러로 ‘테크노 스릴러’ 작가인 톰 클랜시의 주가가 올랐다. 특히 소설 ‘적과 동지’(고려원·1995년)는 이번 비행기를 이용한 테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일본이 ‘제2의 진주만’ 침공을 벌이인 뒤 전황이 불리하지자 극우 일본인 기장이 민간여객기를 몰고 백악관에 자살공격을 감행한다는 내용이다.

중동 문제를 둘러싼 테러리즘을 다룬 클랜시의 대표작으로는 ‘공포의 총합’(고려원·1992년)이 꼽힌다. 중동 테러리스트 그룹이 핵탄두를 손에넣고 덴버의 풋볼 경기장을 폭파시킨 뒤 벌어지는 치밀한 첩보전을 다룬다. 테러 스릴러의 고전으로 꼽히는 토머스 해리스의 ‘블랙 선데이’(창해·1999년)의 설정과 비슷하다.

크랜시는 테러 사건 직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뉴욕 워싱턴 연쇄테러는 소설에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끔찍한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클랜시판 테러가 핵이나 미사일을 동원한 테러 위협을 다룬다면 ‘의학 스릴러’의 대가인 로빈 쿡의 작품 ‘제3의 바이러스’(열림원·1998년)나 ‘벡터’(열림원·2001년)에 등장하는 테러는 더욱 섬뜩한 생물학 무기를 앞세운다. 향후 테러는 조직적인 음모가 아니라 개인적인 도발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브래트 피트 주연으로 영화화된 척 팔라닉의 소설 ‘파이트 클럽’(책세상·2001년) 역시 개인의 정신분열이 가져오는 파국을 섬뜩하게 그렸다. 낮에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지만 밤이면 폭력클럽의 리더로 변하는 주인공은 “폭력을 통해 세상을 정화한다”며 사제 폭탄으로 ‘세계 최고층 빌딩’을 손쉽게 무너뜨린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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