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국민대표'에 큰소리라니

  • 입력 2001년 9월 13일 18시 39분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 자꾸 그래요. 왜!”(진념 경제부총리)

“국세청장으로 임명됐을 때 민족 성지인 마니산에 올라가 백배(百拜)하면서 이 나라에 성역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안정남 건설교통부장관)

올해 각 경제 부처에 대한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과거에 보기 어려웠던 ‘색다른 모습’이 적잖게 눈에 띈다.

국감에서 의원들이 장관 등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여 추궁하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수감기관의 장(長)이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희한한 논리로 국감 진행을 방해하는 일이 부쩍 눈에 띈다.

진 부총리는 11일 재경위 국감에서 일부 언론에 보도된 공적자금 차환발행 기사의 진위 여부를 묻는 안택수의원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 때문에 재정경제부 국감은 다음날 오전까지 공전했다.

12일 국세청 국감에서 전직 국세청장 자격으로 출석한 안 장관은 언론사 세무조사의 정치적 배경에 대한 질의에 느닷없이 ‘성역 척결론’을 폈다. ‘마니산’과 ‘국립묘지’ ‘4·19 묘소’를 거론하며 우국충정에서 언론사를 조사했다고 말했다. 야당의원들은 “위에서 시켜 세무조사를 했다는 사실은 하늘도 알고 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국세청과 함께 ‘언론 길들이기’의 첨병으로 나섰던 공정거래위원회는 국감을 앞두고 의원들에게 ‘통고장’을 보냈다.

공정위는 “이 문제는 법정소송을 통해 진위가 가려질 것이므로 국감에서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부 인사들이 때로 정치인들에 대해 느끼는 불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국감에서 나타난 일부 장관들의 행태를 보면서 의원들이 지닌 ‘국민의 대표’라는 성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영해<경제부>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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