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 ML통신]‘희생’ 도 좋지만…

  • 입력 2001년 9월 3일 18시 35분


미국 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의 팻 길릭 단장은 선수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능한 단장 중 한 명이 된 인물이다. 필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코치 시절인 1990년 그를 알게 돼 이후 자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 중 하나가 동양인 선수에 대한 얘기다. 그는 “한국과 일본 선수들은 팀에 대한 충성심이 미국 선수에 비해 매우 높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잘 따르고 소화해 낸다”고 아주 좋게 평가했다. 이를 달리 생각하면 미국이나 히스패닉계 스타들은 머리가 커지면 그만큼 다루기 힘들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완전하지 않은 허리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로테이션을 한차례도 거르지 않고 역투하다 지난번 뉴욕 메츠전 이후 여론의 집중 화살을 맞았던 박찬호나, 무려 65경기째 등판한 지난 일요일 처음으로 만루홈런을 허용한 김병현의 패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들은 그동안 아파도 쉬지 못하고 지쳐도 팀을 위해 꼬박꼬박 등판했다.

특히 김병현은 일요일 역전 만루홈런을 맞은 데 이어 3일에는 연장 끝내기 홈런을 맞아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어 걱정스럽기도 하다. 본인의 생각보다 공의 위력이 떨어진 결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파도 팀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우리 선수들인데 이를 미국팬들이 제대로 이해해 주기를 기대할 순 없고 두 팀의 요직에 있는 인물에게도 기대하긴 어렵다.

오죽 했으면 박찬호가 얼마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완투승을 거둔 뒤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까지 했을까.

허구연/야구해설가 koufax@netian@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