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초보 골퍼와의 즐거운 라운드

  • 입력 2001년 9월 3일 10시 50분


골프란 운동을 시작한지도 꽤 되었습니다. 처음 머리 올리던 날이 지금도 기억 납니다. 제가 처음 머리 올린 골프장은 퍼블릭이었는데, 첫 홀이 파 3였습니다. 별로 긴장되지도 않고 편안했습니다. 아무 느낌 없이 티샷한 볼이 핀 바로 앞에 떨어지더군요. 가볍게 버디를 하고 골프란 보기보다 쉬운 운동이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서 씁쓸합니다.

사실 초보자에게 파 3홀은 어쩌면 가장 쉬운 홀입니다. 어쩌다 티샷 한번만 잘 맞아 그린에 올라가면 대충 투펏이나 쓰리펏으로 파 아니면 보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각설하고… 얼마 전 초보자 한 분과 라운드를 했습니다. 스윙폼이 무척 멋져 보이는 분이었는데 스윙 스피드나 폼으로 봐선 제대로 걸리면 상당한 장타를 칠 분이었습니다. 스윙이 너무 빠른 데다가 볼을 칠 때 습관적으로 몸이 일어나는 바람에 계속 볼의 윗부분을 때리고 있었고 그 같은 현상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분의 굿샷을 몇 번 보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멋진 스윙폼으로 보아서는 연습량에 따라서 곧 그분은 길고 곧은 샷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다음 번에 라운드를 함께 할 때는 더 좋은 샷을 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오늘은 딱딱한 주제를 벗어나서 좀 소프트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다름아닌, 초보자와 라운드를 할 때 중상급자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입니다.

초보자와 라운드 하는 것을 꺼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초보자와 라운드를 하면 그에게 신경 쓰기 때문에 자신의 스코어가 나빠진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초보자와 라운드를 하면 라운드의 맥이 끊길 수가 있습니다. 중상급자라면 비교적 루틴한 과정으로 특별한 ‘버벅거림’ 없이 라운드가 진행될 수 있지만, 초보자의 경우는 예측불허의 샷이 난무하기 때문이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초보자와 라운드를 하면 스코어가 나빠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골프에서 가장 가증스러운 핑계이다.’ 그것은 자신의 실수를 남에게 전가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가장 흔한 경우, 그는 결국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자 아직도 마인드를 평정 못한 사람입니다.

처음 보는 초보자가 “오늘 폐를 끼칠 것 같은데요”라고 미안해 하면, 우리는 “천만의 말씀입니다. 편하게 치세요”라고 대답한 후 라운드가 끝나고는 혼자 생각합니다. ‘역시… 초보랑 치니까 오늘 스코어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앞서 말한 “천만의 말씀입니다”란 말은 결과적으로 거짓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초보자의 골프로부터 분명 최소한 한두 번의 짜증은 내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초보자가 어떻게 치든 전체적인 리듬이 끊기든 말든 자신은 자신의 샷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조금 다른 경우이지만 초보자에게 자신의 굿샷을 보여주겠다는 생각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앞의 경우보다는 조금 더 애교스런 상황이지요.

골프 좀 친다는 사람치고 처음부터 초보가 아니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이 초보였을 때 자신을 데리고 다니면서 귀찮아 하지 않고 이것 저것 가르쳐 주던 자상한 골프 선배가 분명 한두 명 있었을 것입니다. 초보자와 라운드를 할 때는 제가 초보시절에 고마워했던 선배를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쟁쟁한 싱글 골퍼 중 한 분은 초보자와 라운드를 하면 다른 날보다 더 마음이 설렌다고 합니다. 오늘은 초보자에게 어떤 기쁨을 줄까라는 생각 때문에 잠을 설친다고 합니다.

그날 초보자와의 라운드에서 시종 안타까웠던 것은 제가 그분의 미스샷에 명쾌한 처방을 내려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뚜렷한 생각이 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티샷하기 전에 담배도 권해 보고 긴장을 풀기 위해 그늘집에서 맥주도 권하고 했는데 도대체 “초보자인 당신과 라운드하는 것이 전혀 지루하거나 짜증나지 않고 오히려 즐겁습니다”라는 명쾌한 메세지를 전달해 줄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속을 열어 꺼집어 내 보여줄 수도 없고… 처음 본 사람이어서 나름대로 깍듯이 대한 것이 어쩌면 그를 더 어렵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상급자가 초보자와 라운드를 할 때는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많습니다. 특히 상급자의 경우 매샷 매샷이 초보자에게는 경이의 연속이고 배울 점으로 보입니다. 그런 것을 즐기십시오. 상급자 자신의 샷이나 매너, 말 한마디 한마디가 초보자에게는 후일 잊혀지지 않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고 초보자의 마음을 무한정 편하게 해 주십시오.

“어제의 초보자가 내일의 초보자”란 법은 없습니다. 3년 전 머리 올려준 후배는 지금 핸디 3의 쟁쟁한 골퍼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저의 샷을 전담하여 보아 주지요. ‘초보자를 배려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골프 매너’이자 장래를 대비한 ‘마음으로 드는 보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초보자를 배려하는 마음, 진정으로 그런 마음으로 골프를 친다면 우리는 그런 상황을 즐길 것이고 그렇다면 결코 ‘초보자와 쳐서 스코어가 엉망이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초보자를 배려하는 진정한 마음이야말로 나 자신과 나의 골프를 위하는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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