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마무리 싸움에 마무리가 없다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21분


올 프로야구 구원 랭킹을 보면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구원부문 선두에 지난달 17일 삼성에서 퇴출당한 리베라가 올라 있다. 리베라는 21일 현재 27세이브포인트(6구원승 21세이브)로 당당히 1위. 2위가 LG 신윤호(22SP), 3위가 허리부상 중인 현대 위재영(21SP)으로 돼 있다. 자칫하면 전반기까지만 뛰고 방출당한 선수가 구원왕에 등극할 상황도 벌어질 판이다.

특이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다승선두가 LG 구원투수인 신윤호로 숱한 선발투수들을 물리치고 13승(4패10세이브)으로 1위에 명함을 내밀고 있다. 그가 따낸 13승 가운데 무려 12승이 구원승. 세이브 상황에 등판해 마무리에 실패했지만 경기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행운의 승리를 챙겼거나 동점 상황에서 타선의 도움으로 얻은 승리들이다.

마무리는 구원승이 아닌 세이브로 평가받아야 한다. 퇴출당한 리베라를 제외하곤 국내 선수들 중 20세이브 이상을 올린 투수가 한명도 없다.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는 것은 뭘 말할까. 국내 프로야구에서 확실한 마무리투수들이 실종됐다는 얘기다. 8개구단 감독들은 “믿을 만한 마무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간계투요원이 마무리를 겸하고 선발투수가 마무리를 맡기도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팬들도 도대체 어느 선수가 마무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시즌초 8개구단 감독들이 점찍어놓은 ‘소방수’ 가운데 시즌 중 교체되지 않은 투수는 단 한명도 없다. 개막시점에서 각 팀의 마무리들은 위재영(현대) 진필중(두산) 리베라(삼성) 이동현(LG) 오봉옥(기아) 강상수(롯데) 누네스(한화) 조웅천(SK). 시즌을 치르면서 다들 부상해 부진의 이유로 마무리에서 중도탈락했고 진필중은 선발로 전업했다가 최근에야 다시 마무리로 나서고 있다.

갈수록 믿을 만한 마무리투수들이 부족한 것은 감독들의 무분별한 투수기용이 첫째 원인이다. 메이저리그에선 1이닝 마무리가 기본. 그래야 다음경기에 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마무리의 등판이 6회도 좋고 7회도 좋다. 급하면 아무 때나 마무리를 내보내 수명단축을 초래한다. 게다가 몇 경기 성적이 안 좋으면 조급증이 난 감독들은 다른 마무리로 부리나케 갈아치운다.

‘마무리 실종 현상’ 속에서 그나마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 투수는 LG 신윤호(22SP)와 두산 진필중(20SP). 하지만 두 투수는 30세이브포인트 올리기가 힘든 상황이라 92년 송진우(25SP) 이후 9년 만에 20세이브포인트대의 성적을 거둔 구원왕이 탄생할 전망이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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