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성적이며 수줍음까지 잘 타는 스타일의 그가 그 날 느닷없이 투스트라이크를 잡은 후 열살 위의 포수 밀러를 불러 뭔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는 전혀 포수를 부를 상황이 아니어서 왜 저러나 하고 궁금했는데 경기 후 김병현은 “소사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변화구를 던지려고 했지만 밀러가 말려 던지지 않았다”고 했다.
정글의 법칙이 존재하는 메이저리그에서 꼬마병정격인 김병현이 보여준 자신감과 두둑한 배짱은 왜 그가 지금 성공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 단면이었다. 김병현은 소사를 올해만 여섯 번 만나 무려 다섯 번이나 삼진으로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소사를 요리하는 방법을 터득한 가운데 즐기면서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마무리투수로 확고히 자리를 굳힌 김병현은 힘들고 외로운 길을 가야 한다. 매일 대기해야 하는 역할이 그렇고 피닉스시가 주는 무미건조함이 젊은 그에겐 또 하나의 장애요인 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로스앤젤레스로 원정만 오면 물 만난 고기처럼 맛있는 것 잘 찾아먹고 친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나는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국내 팬에게는 박찬호의 선발경기가 더 큰 관심거리이지만 한국인 최초의 포스트시즌 등판 가능성은 김병현에게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올 가을 ‘한국산 핵잠수함’의 위력에 미국 전역이 깜짝 놀랄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허구연/야구해설가 koufax@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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