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병원의 가요클리닉' "어? 노래가 되네"

  • 입력 2001년 8월 20일 18시 28분


‘이병원의 가요 클리닉’ 강좌가 열리고 있는 삼성플라자 분당점(경기 성남) 내 문화센터.

60여명의 여성들이 의자에서 동시에 일어서더니 발을 동동 구르며 “왜∼그∼래∼에”라고 목청을 높인다. 가수 출신으로 강의를 맡고 있는 이병원씨(39)가 “다시”를 부르짖는다. 신병훈련소에서 갓 입대한 훈련병에게 악을 쓰게 하는 투다.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르세요. 소리가 새면 안됩니다.” 이씨가 채근하자 수강생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이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자기 소리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자신있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노래를 못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세요”

진지하고 환한 표정이 마치 초등학교의 음악 교실 풍경 같다.

이날 배울 노래는 나훈아의 ‘아담과 이브’. KBS1 일일극 ‘우리가 남인가요’의 주제가다. 이씨는 “나훈아의 노래는 멜로디가 쉬우므로 가창력으로 감정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웃음과 함께 웅성거림이 인다.

“나훈아처럼 ‘표현’한다면 벌써 가수 됐게.”(수강생)

“물론 쉽지 않지만 노래 가사를 그림 그리듯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노래해보세요.”(이병원)

이씨는 이 노래 가사 가운데 ‘난 그냥 니가 왠지 좋아’란 대목은 애인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것처럼 각 음절을 강하게 나눠 부르라고 강조한다.

수강생들이 몇 차례 소절을 나눠 불러봤으나 이씨는 영 신통치 않다는 표정. 이씨의 지시에 따라 수강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복식 발성을 연습한다.

“소리를 크게 내되 복식 호흡으로 그 양을 조절하세요. 그냥 소리를 내려고 하지 말고 몸을 쓰세요. 몸을.”

이씨는 “가수들의 제스처는 그냥 폼이 아니라 노래를 쉽게 잘 부르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이날 수강생들은 ‘아담과 이브’를 비롯해 ‘꽃밭에서’ ‘해변으로 가요’ 등을 합창했다. 강의를 마친 이들은 “오늘 배운 노래로 주말 모임에서 신곡 발표를 해야겠다”며 즐거워했다.

최문형씨(50·주부)는 “모임에서 노래를 못해 자존심이 상한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노래방에서 한가락 멋지게 부를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수강생의 연령층은 30대부터 50대까지. 남성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씨는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 임원급 중년 남성들은 개인 교습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음치 ‘환자’들. 6개월∼1년씩 이씨의 강의를 듣고 있다. 이씨는 “음치는 심리적으로 자신감을 갖는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다”며 “수강생 중에는 소리를 맘껏 지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음치 교정을 시작한 것은 15년전. 그는 “노래를 못하면 따돌림당하는 세태를 보고 음치 교정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사업’은 확장일로. 그는 KBS 라디오 ‘임백천의 뮤직쇼’를 비롯해 라디오와 TV 5곳에서 출연해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는 전주와 제주에 ‘가요 클리닉’ 지사를 설립했고 9월부터 음치교정 강사를 육성하기 위해 세종대 사회교육원에 ‘음치 클리닉 가요 지도자 과정’을 개설하고 주임 교수를 맡는다.

그는 “전국 동 단위 모임에서도 음치 클리닉에 관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어 후배 양성이 절실하다”며 “앞으로 음치 클리닉에 관한 이론적 체계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허엽기자>heo@donga.com

◈"마이크를 두려워말라, 닫힌 공간서 훈련하라"

이병원 씨가 소개하는 음치탈출 5계

▽마음속에 갇힌 소리를 터뜨려라〓노래방에서 마이크 잡기를 두려워 하지 말고 소리를 질러 보라. 음치는 병이 아니다. 노래 기피증이 ‘질병’이다.

▽밀폐된 곳에서 소리를 낸다〓밀폐된 자동차 안에서 노래를 불러 본다. 목욕탕은 자연스럽게 메아리가 있어 초보자들에게 최적의 장소.

▽자기 소리를 녹음해 듣는다〓녹음된 자기 소리는 낯설다. 그러나 그게 다른 이들이 듣는 소리다. 이에 익숙해져야 한다.

▽애창곡은 친숙한 노래로〓음악에 대한 느낌은 백인백색. 어려운 노래를 애창곡으로 정할 필요가 없다.

▽성대에서 만들어진 소리를 뱃심으로 밀어내라〓가장 자연스런 소리다. 특히 목 등 혀 가슴에 힘을 주지 마라.

<허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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