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메멘토', 퍼즐 같은 역순전개… 그리고 반전

  • 입력 2001년 8월 20일 18시 28분


‘메멘토’는 골치 아픈 영화를 싫어하고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말아야 할 영화다. 마치 퍼즐 게임 같은 이야기를 짜맞추기 위해서는 머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정신을 집중하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뇌싸움과 추리를 즐기는 스릴러 팬이라면 이 영화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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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미국의 불과 11개 극장에서 개봉됐던 ‘메멘토’는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의 입소문과 호응에 힘입어 개봉관이 500여 개로 늘어났다. 저예산 독립영화인 이 작품은 ‘미이라2’ ‘진주만’ ‘슈렉’ 등 블록버스터들이 속속 개봉하는 와중에도 미국 박스 오피스 10위 이내를 유지해 흥행과 작품성을 인정받았었다.

신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선보였던 이 작품으로 단숨에 ‘천재 감독’이라는 주목을 받고 있다.

주인공인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전직 보험회사 수사관. 그는 머리를 다친 후 10분 이상 기억을 유지할 수 없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다. 그의 유일한 기억이자, 목표는 아내를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을 찾아내 복수하는 것. 그가 갖고 있는 단서는 범인의 이름은 존이며 성은 ‘G’로 시작한다는 사실뿐이다.

10분만 지나면 뭐든지 깡그리 잊어버리는 그는 메모와 사진에 의존해 기억을 유지한다. 자신의 자동차를 알아보기 위해 ‘내 차’라고 적힌 자동차 사진을 갖고 다니는 식이다. 메모도 믿지 못하는 그는 ‘존 G’처럼 확실하고 중요한 기억은 몸에 문신으로 새겨놓는다.

그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테디(존 판톨리아노)와 나탈리(캐리 앤 모스). 테디의 사진 밑에는 ‘그의 거짓말을 믿지 말라’, 나탈리의 사진 밑에는 ‘그녀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다. 동정심에서 너를 도와줄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놀란 감독은 10분의 기억력을 가진 레너드와 10분 이상의 기억을 가진 관객이 ‘공정한’ 추리 게임을 하도록 시간을 해체해 거꾸로 나열하는 복잡한 구성을 택했다. 10개여 개의 단락(시퀀스)으로 나뉜 이 영화는 각 단락이 꼬리를 물며 역순으로 진행된다.

첫 단락의 첫 장면이 두 번째 단락의 마지막 장면이 되고, 두 번째 단락의 첫 장면은 다시 세 번째 단락의 마지막 장면이 되는 독특한 구성이다.

전체적으로는 역순이지만, 각 단락 내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 이런 구성은 관객들에게 낯선 상황을 먼저 보여주고, 이 상황이 벌어진 과정을 그 다음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관객이 주인공 레너드와 똑같은 1인칭 시점에서 영화를 따라가도록 하는 효과를 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 숨가쁘게 각 단락의 상황을 좇아가며 진실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 가다보면, 어느새 영화 전체의 밑그림이 드러난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과 함께 완성된 밑그림은 놀랍게도 영화 시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고 만다.

IQ 테스트용 같은 이 영화를 한 번 보고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관객은 많지 않을 듯. 미국 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는 ‘메멘토의 헷갈리는 부분을 위한 가이드’를 기사로 다뤘을 정도다. 24일 개봉. 15세 이상.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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