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사람세상]일본 소설을 읽으며

  • 입력 2001년 8월 17일 18시 30분


지겹다. 또 일본이다.

매년 8월 중순마다 일본을 생각하고 분개하고 화내는 일은 도대체 언제까지 되풀이될지 모르겠다. 일본은 이제 그만 과거를 잊자고 하지만, 과거사에서 놓여나고 싶은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충심으로 사과하고 성의를 보이면 끝날 일을, 도대체 왜 아픈 상처를 들쑤시고 소금을 뿌리는 짓을 자꾸 한단 말인가. 동아시아에서 야스쿠니 신사가 어떤 의미인지 뻔히 알면서 왜 일국의 총리가 거기에 가나.

그렇다고 일본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기에는 지금까지 읽었던 일본 소설들이 너무 아깝다. 내가 지금까지 본 일본 작가들의 소설은, 이시하라 신타로나 미시마 유키오처럼 아예 극우를 표방하는 작가를 빼놓으면, 한국 작가들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양심적이고 진지했기 때문이다.

◆ 양심적 작가들의 외침

서가 앞을 거닐며 우선 내가 가장 먼저 읽었던 일본 소설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문학사상사·1997년)를 꺼내본다. 고양이의 눈을 빌어 인간사의 허영과 뒤틀림을 유쾌하게 풍자했던 나쓰메 소세키, ‘마음’(범우사·1999년), ‘꿈 열흘밤’(웅진·1995년) 등을 통해 인간 간의 윤리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던 이 작가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고이즈미 총리가 하는 짓을 보고 잘했다고 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피해자들에 대해 마음 깊이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

◆ 극우정치인 한심한 작태

패기 넘치는 젊은 여성 작가 야마다 에이미의 ‘애니멀 로직’(태동출판사·2001년)도 펼쳐본다. 아무리 보아도 ‘흑인이고 백인이고 몸 속에 흐르는 피는 붉지 않은가’고 말하면서 흑백 인종차별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이 작가가 황인종 가운데서도 자국민-타국민 차별을 두는 일본의 제국주의를 편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포스트모던 기법으로 인생에 대해 탐구한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웅진·1995년)를 보면, 이렇게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타 국민을 차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하기야 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던 시기를 자기 작품의 모태라고 말하는 이 작가와 국수주의는 태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더 고통스럽고 화가 난다. 일본 소설을 아끼는 한 독자가 일본 소설을 읽는 것 자체에 막연한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일본 정치인들이 증오스럽다. 하나하나 만나면 다 좋을 사람들을 ‘정당하게’ 미워하도록 만드는 극우적 행보가 경멸스럽다.

송경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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