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서양鍾과 동양鍾 왜 다를까 '문명은 디자인이다'

  • 입력 2001년 8월 17일 18시 30분


◇ '문명은 디자인이다'/권삼윤 지음/272쪽 13900원 김영사

여행담은 대부분 지루하다. 독설로 이름났던 영국 저널리스트 맬컴 먹거리지의 얘기대로, 전쟁이나 간음과 마찬가지로, 여행은 당사자들에겐 흥분되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사건이다.

그런 지루함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흔히 쓰인 것은 여정에서 만난 풍물들을 소묘해서 여행담과 함께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낯선 땅의 낯선 풍물들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데서 소묘는 글보다 단연 뛰어났다. 사진술의 출현으로 그런 작업은 한결 수월해 졌다.

‘문명은 디자인이다’는 사진의 그런 기능을 충분히 활용한 책이다. 글과 조화된 사진들이 많이 실려서,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글을 읽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 여행담을 생기있는 책으로 만드는 것은 저자가 자신이 찾은 곳들의 풍물들에 대해서, 특히 유적에 담긴 문명의 자취에 대해 보이는 열정적 관심이다.

그는 뜻 깊은 유적을 보고, 설명을 듣고, 감탄한 뒤 안내인을 따라 다음 유적으로 옮겨가는 관광객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보는 것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것들에 담긴 뜻을 살피고 패턴을 찾는다.

그 자신의 얘기로는,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문명의 해석을 시도해보려 한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시작해서 여러 대륙들과 시대들을 거쳐 이스터 섬에서 끝나는 스물 남짓한 에세이들은 눈길을 끄는 사실들과 흥미로운 관찰들로 가득하다.

특히 독자들의 마음을 잡는 것은 짧은 글귀로 표현된 통찰들이다. “서양 종은 안을 쳐서 밖으로 알리고 동양 종은 밖을 쳐서 안을 울린다”는 구절은 전형적이다. 같은 목적을 위해서 같은 구조를 지니고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진 종들인데, 서양과 동양의 종들이 사용법에서 대척적이라는 점에 주목한 이 구절을 누가 무심히 읽고 지나치겠는가.

아쉽게도, 이런 통찰은 단단한 사실들에 바탕을 둔 해석으로 받쳐지지 못했다. 먼저, 역사적 고찰이 없으니, 종이 처음 발명된 환경도, 발전해간 과정도 나오지 않는다. 동양의 종들로는 우리 나라 것들만 논의되고 중국이나 일본의 종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서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하거나 뛰어난 종들도 언급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동양과 서양이 타종 방식에서 그렇게 다른 연유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서양의 종은 그렇게 알림과 경고, 또는 강요의 수단이었을 뿐이었다”라는 구절에서 저자의 생각이 비스듬히 드러날 따름이다.

그러나 타종 방식의 차이는 실은 아주 산문적인 이유에서 나왔다. 서양은 일찍부터 컵 모양의 종들을 만들었고 동양은 원통형의 종들을 만들었다. 자연히, 그런 모양에 걸맞는 타종 방식이 마련되었다. 이어 중세 서양에서 종 음악(bell music)이 융성하자, 타종 방식이 고착되었을 뿐 아니라 종 모양도 훨씬 납작해졌다.

값싼 단체 관광이 성행하는 시대에 흥미로운 여행담을 쓰는 일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문명은 디자인이다’는 책의 내용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흥미로운 여행담을 쓰는 길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도 퍽이나 흥미롭다.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복거일(소설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