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일축전' 그럴줄 몰랐는가

  • 입력 2001년 8월 16일 18시 52분


평양에서 열린 8·15남북공동행사에 참가한 남측 대표단의 일부 인사들이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에서 가진 행사에 참석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이번 ‘기념탑’ 행사 참석이 우리 사회 내부의 통일 논의나 남북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된다.

통일부는 북측이 이른바 민족통일대축전이라는 행사의 개폐막식을 단독으로 진행하겠다는 통보를 해왔고 남측 대표단도 ‘기념탑’ 부근 행사에는 참석도 참관도 않는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뒤늦게 그들의 방북이 허용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남측 추진본부는 남한 내 통일관련단체를 총망라하고 있는 데다 행사장소 문제와 남측 대표단의 방북 성격이 확실해졌기 때문에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부의 그 같은 주장은 외형상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북측이 당초 남북한에서 공동으로 행사를 개최하기로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평양 행사만 치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 하든 남측대표단을 이른바 북측의 조국통일 3대헌장인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고려연방제,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의 지지세력으로 만들어보자는 속셈이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정치적 속셈을 빤히 들여다보면서도 민족 교류 차원이라며 대표단의 방북을 허용한 정부의 처사는 이해할 수 없다.

또 정부가 남측 대표단으로부터 받았다는, ‘기념탑’ 부근 행사에는 참석도 참관도 않는다는 각서만 해도 개별 인사들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단체별로 받은 것이어서 일부에서는 그런 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북측의 통보 하나만 믿고 허겁지겁 방북을 허용한 결과이며 북에 끌려 다니는 대북정책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개폐막식을 단독으로 하겠다던 북측은 ‘2만여명의 평양시민들이 아침부터 기념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버스까지 대기시켜 놓고 남측 대표단의 행사참석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처럼 남측 대표단의 민족적 감정을 이용하려는 북측의 태도도 속이 보이는 것이지만 “북녘동포들이 뙤약볕에서 기다린다”며 버스에 올라탄 일부 남측 대표단의 행동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기념탑’ 행사에 참석한 남측 인사들은 우선 남북교류협력법의 방북 승인 조건을 위반한 셈이다. 이들에 대한 법적 처리 문제는 남한 내부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남북한간에도 새로운 논란거리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든 개인이든 누구나 원칙과 선은 분명히 지켜야 남북한관계의 건전한 발전도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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