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의 시국관과 영수회담

  • 입력 2001년 8월 15일 18시 38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어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제의한 영수회담은 원칙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때보다 대립과 갈등이 심각한 상태다. 여야가 영수회담을 열어서라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이념 지역 정서 등 모든 것이 대립되어 있어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2일 사회원로 및 시민단체 인사 32명이 언론사세무조사 등으로 야기된 사회혼돈을 우려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그저께는 각계 원로 115인이 난국타개를 호소하는 성명서도 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어제 경축사에는 그 같은 각계 각층의 우려의 목소리를 반영한 흔적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외면한 듯한 인상마저 준다. 김대통령은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민주당에서도 당정쇄신책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김대통령의 시국관은 확실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김대통령의 시국관이 그렇다면 당장 여야 영수회담을 가진다고 한들 무슨 생산적인 결과가 나올까하는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김대통령은 “우선 경제와 민족문제만이라도 서로 합의해서 해결해 나가자”며 이총재에게 영수회담을 제의했지만 한나라당측은 김대통령의 어제 경축사가 지금의 국가위기와 국론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안일한 시국관만 드러냈다고 비판한다.

김대통령과 이총재가 1월4일 만났을 때처럼 또 언성만 높이고 합의사항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회담을 한다면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시 두 사람은 서로 얼굴만 붉히고 돌아섰다. 시국문제에 대한 원인과 그 해법을 두고 전혀 다른 견해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여야는 대립상태에 있고 이런 상황에서 영수회담이 열린다면 여야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 줄 것이다. 과거 영수회담을 보면 서로 합의한 사항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어제 경축사에 나타난 김대통령의 시국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여야 영수회담을 하고 그리고 애써 합의사항을 만들어낸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국민의 정치불신만 키우게 된다. 영수회담을 갖기 전에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하고도 근원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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