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씁쓸한 '휴가 뒤끝'

  • 입력 2001년 8월 13일 18시 54분


주부 이모씨(36)는 올 여름 4년 만에 가족 휴가를 즐겼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남편이 경영하는 건설회사가 부도났고 가족은 빚쟁이에게 시달렸다. 남편은 학원 강사, 이씨는 학습지 강사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4년동안 이를 악물고 뛴 덕분에 올 초 빚으로부터 해방됐고 드디어 휴가갈 여유가 생긴 것.

1주일은 후딱 지나버렸다. 동해 감포 해수욕장에 다녀오고 대구의 시가와 친정에 들르고 나서 집에 오니 1주일이 지나가 버린 것.

이씨는 4년만의 휴가를 마무리할 ‘마지막 이벤트’를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바로 ‘가족 노래자랑 대회’. 이씨는 집 부근에 하나 뿐인 노래방에 전화를 걸었다.

“1시간 ‘노는데’ 얼마죠?”

“전화거시는 분이 주부예요, 아가씨예요?”

“주분데요….”

“그럼 5만원입니다.”

“???”

한참만에 노래방 주인이 자신을 ‘주부 아르바이트 지원자’로 오인했었다고 깨달은 이씨는 기분이 상해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휴가 마지막날 밤 아이들은 “왜 노래방에 안가냐”고 계속 칭얼댔다.

<이진한기자>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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