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美파워엘리트 한눈에 '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

  • 입력 2001년 8월 10일 18시 30분


◆ '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 /소에지마 다카히코 지음 신동기 옮김/336쪽 1만원 들녘

현재 미국은 사실상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고 많은 나라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은 엄연한 당사자 중의 한 국가이다. 미국은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戰時)에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잘 풀려나가던 남북문제가 정체국면으로 접어들게 된 것도 미국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기인한다.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미국 공화당행정부의 지지기반은 군산(軍産)복합체이다. 따라서 부시행정부는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여 미사일방어(MD) 체제의 구축을 강행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 등 이른바 ‘불량국가’들로부터 오는 미사일 위협을 빌미로 하여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강행함으로써 북미관계가 경색되고 남북관계도 이에 연동되어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미국변수가 한반도문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최근의 한반도정세를 통해서 목격하고 있다.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정체된 데는 부시행정부를 움직이는 주요 인사들에 대한 성향파악과 한반도문제에 대한 이해의 노력을 게을리 한 우리 정부의 책임도 크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국 지도층의 사상적 성향과 영향력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군사적 자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유일 패권국가로 부상한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 지식, 사회의 움직임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미국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정치사상의 배경이다. 미국의 정치에도 술수가 있고 파벌이 있으며 추문이 있는 것을 외신을 통해 심심찮게 접한다. 그러나 그것은 껍데기일 뿐, 미국 정치의 알맹이는 정책 대결이며 그것을 일상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이 오늘의 세계를 대표하는 정치사상의 갈래들이다.

아직 우리 정치에는 술수와 파벌이 있을 뿐 정치사상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상의 다양성을 일체 용납하지 않는 군부독재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빛 바랜 색깔론을 아직도 씻어버리지 못하고 당론(黨論)을 벗어난 정치행위가 용납되지 못하는 우리 상황에서는 정치사상에 입각한 남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의 저자 소에지마 다카히코도 똑같은 불만을 일본 정치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가 미국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부터 던져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궁금증을 자상하게 풀어주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사상과 그에 입각한 정치활동을 저자는 중심부와 주변부로 크게 나눠 본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고립주의, 세계주의 등 해묵은 명제들이 여러 형태로 각자 분화되어 서로 엇갈리는 것을 정치의 주류로 보면서 환경운동, 페미니즘 운동, 아프리칸 운동, 종교 우파 운동 등 소수집단의 강한 이념성이 주류의 흐름에 산발적 영향을 끼치는 주변부 현상을 부차적으로 설명한다.

주류 속에서도 지배적 현상으로 저자가 보는 것은 레이건 시대 이후 보수진영의 재편성이다. 유엔 대사를 지낸 진 커크패트릭을 비롯한 이른바 ‘레이건 데모크랫’의 대거 전향으로 이뤄진 보수진영의 강세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세이며, 1992년 부시 전대통령의 재신임 실패는 그 안에서 조그만 굴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클린턴의 8년 재임도 민주당의 전통적 정강에 집착하지 않고 이 대세에 따른 것으로 저자는 본다.

미국은 막강한 국력을 가진 나라지만 여러 갈래 정치사상이 절충하여 그 정책을 빚어내기 때문에 하나의 방향으로 그 국력을 기울이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데 레이건 정부의 대 소련 강경책은 국민 80%의 지지를 받을 정도로 강한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에 레이건 데모크라트의 전향과 같이 특이한 정계 개편이 이뤄졌고, 소련에 대한 압력을 비상한 수준으로 강화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미국의 경제적 기술적 우위보다도 이 정치적 국론 집중이 소련 붕괴의 더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본다.

부시의 새 행정부는 클린턴 정부에 비해 북한에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태도가 과연 어떤 정책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얼마만한 추진력을 가지게 될지 판단하려면 미국의 정치사상이 전개되는 양상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미국측 자료와 문헌에서는 그 정치사상의 흐름을 상식으로 깔고 있어서 외부인이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터에 우리와 비슷한 입장의 일본인 저자의 명쾌한 해설이 반갑다.

‘유연성’을 중시하는 일본 정치풍토에서 ‘원칙’을 따르는 미국 정치풍토가 이해하기 어려움을 저자는 말한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치사상을 성숙시키기 위해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정치사상의 면모를 두루 검토할 필요가 있거니와, 정치에 원칙이 있어야 함을 절실히 느낀 것이 이 책에서 얻은 제일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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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환(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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