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술렁이는 부동산시장-上]매매 잠잠…호가만 껑충

  • 입력 2001년 7월 29일 18시 36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직장을 둔 이종웅씨(37)는 최근 도곡동에 전셋집을 구하러 갔다가 귀를 의심했다. 올해말 입주하는 도곡동 S아파트 34평형을 소개받았는데 전세금이 무려 3억원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서울의 웬만한 곳에서 집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중개업자는 “그나마 입주 때가 임박하면 전셋집을 구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며 겁을 주었다.


서울 수도권지역의 전세난이 도를 지나칠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여름철 비수기가 무색하다. 서울 강남 지역은 전세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전세난은 서울 외곽과 신도시를 거쳐 일부 지방 도시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임대를 선호하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미 소형 아파트는 만성적인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 여기에 최근 서울 강남권의 재건축 붐이 일면서 전세난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글 싣는 순서▼
上-매매 잠잠…호가만 껑충
下-'재건축 유행병' 잡아야

매매가 상승도 재건축 바람을 타고 있다. 재건축에 대한 기대 심리로 아파트 값이 치솟고,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주민들이 전셋집을 찾으면서 전세난을 더하고 있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 매매가와 주변 아파트 전세금을 살펴보면 재건축의 ‘파괴력’을 엿볼 수 있다. 29일 부동산 중개프랜차이즈 업체인 유니에셋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도곡동 주공 1차 10평형은 올들어 40.3%나 상승해 2억525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역삼동 영동 1단지 13평형도 같은 기간 37.7% 상승했고 고덕 시영 13평형은 같은 기간 42.5%나 올랐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 주변의 전세금은 폭등하고 있다. 재건축이 전세 수요를 크게 늘리기 때문이다. 도곡 주공 인근 청실 1차 31평형은 올 상반기 37% 올랐다. 영동아파트 주변과 고덕 시영아파트 주변 아파트 전세금도 14.3∼15.4% 상승했다.

서울의 저층 아파트 재건축은 이제 첫 발을 디딘 수준이다. 2만 가구가 넘는 저밀도 아파트와 개포 고덕 등 대형 택지지구 아파트들이 줄줄이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재건축을 위해 8월 이주를 시작하는 대치 주공 552가구는 재건축이 전세시장에 던질 충격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552가구에서 쏟아진 전세 수요자가 주변 아파트 전세금을 두 달새 20%나 끌어올렸다. 그나마 매물이 품귀 상태다.

강남 저밀도 아파트 등에서 2000∼3000가구씩 재건축이 진행되면 앞으로 5∼10년간 만성적인 전세난이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강남에서 집을 구하지 못하면 분당과 일산, 서울 외곽 등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는 전세난이 외곽으로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는 예측을 낳고 있다. 분당지역 전세금은 올들어 11.1% 올랐고 일산도 10.3%의 전세금 상승률을 기록했다. 최근 소형아파트 공급이 늘어나고 있지만 늘어나는 전세 수요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매매시장의 움직임은 파급 효과나 상승 정도가 전세에 비해 심각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부동산114 김희선이사는 “일부 지역의 매매가 상승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초래할 뿐 서울 수도권의 전반적인 현상은 아니다”고 말했다.

강남권을 벗어나면 큰 폭의 가격 상승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 서울과 신도시 대부분 지역에서 올 상반기 매매가는 3∼4% 오르는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강북의 일부 지역은 올 들어 매매가격이 오히려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 강남 등의 집값 상승은 소비자들을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분당 제일부동산 이종필실장은 “거래 없이 호가만 올라 실제 매매가격이 올랐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도 “그러나 가격 상승에 대한 불안감 탓에 문의 전화는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개업자는 “조합과 시공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업 계획을 내세워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은우기자>libra@donga.com

▼정부-전문가 '소형주택 의무화'등 현안 토론▼

올해 발표된 정부의 주요 주택 정책(자료:건설교통부)
구분3월5월7월
정책
목표
주택구입 지원 통한 주택경기활성화 및 서민 주거 안정주택구입 지원 통한 주택경기활성화 및 서민 주거 안정소형주택 강제 확대 통한 서민주거 안정
주요
내용
·전세금 대출 금리 인하 및 대출 금액 상향 조정
·임대주택사업자에 대한 지원 확대
·국민임대주택 공급 확대
·생애 첫 주택 구입 지원자금 신설
·그린벨트내 임대주택 공급
·임대주택 조합 제도 도입
·수도권 공공택지 내 임대주택 공급 확대
·소형주택 의무비율 부활 추진
·다가구 다세대 등 빈방 정보 제공

매매 및 전세가격이 이상 과열되는 것은 오락가락하는 정부 정책의 ‘변덕’에 우선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는 재건축 규제완화를 3월과 5월 잇따라 추진하다 이달 들어서는 정반대로 찬물을 끼얹는 ‘소형주택 의무공급’을 부활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등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27일 건설교통부가 부동산 시장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검토하기 위해 마련한 토론회에서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소형주택 공급 의무화’ 등 현안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이어졌다.

삼성물산 주택부문의 송문헌전무는 “올해 동시분양에서 나타난 청약 열기는 주가 하락과 은행 금리 하락 등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자금이 늘어난 것으로 자연스러운 자금 흐름”이라고 전제하고 “소형주택 수요가 늘어 업체들이 알아서 공급을 늘리는 등 시장기능이 작동하고 있는데 정부가 소형주택 공급을 의무화할 경우 오히려 시장 왜곡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호건설의 박종수상무는 “정부가 5월에는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가 불과 2개월 만에 소형주택 비율 의무화 방안을 내놓는 등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 상무는 97년 이후 40% 이상 분양가가 오르는 등 집값이 뛰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지하 주차장 면적이 포함되지 않은 점 △안목치수 도입에 따른 평형 감소 △통신인프라 구축 비용 추가 △분양보증 수수료 상승 등을 고려할 때 “일정 부분의 집값 상승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재건축에 따른 매매 전세가격 급등은 강남과 과천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인데도 (건교부가) 소형의무 비율을 수도권 모든 지역에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을 지적했다.

부동산114의 김희선상무는 “전세가격이 올라 매매가격에 육박하면서 전세 수요자들이 매매로 전환하면서 전세가와 매매가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의 불안 심리를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주택산업연구원 이동성원장은 “주택보급률이 선진국 수준인 110%에 이르기 전에는 매매 및 전세가 상승 등 불안 요인이 남아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주택보급률을 올리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건교부 최재덕 주택도시국장은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하고 다른 수도권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소형주택 의무 비율 도입에 따른 업체의 수익성 저하를 보전하기 위해 용적률 완화와 국민주택기금 금리 인하 등의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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