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생은 길고 나눠야 할것은 많다" '수도원 기행'

  • 입력 2001년 7월 27일 18시 39분


◆ ‘수도원 기행’/공지영 지음/254쪽 9900원 김영사

2년 전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동생 부부를 따라 수도원이란 곳을 처음 가본 적이 있다. 새벽빛이 유리창을 물들일 때 시를 구우며 손에 잡힐 말듯 가까운 감미로운 빛에 감싸여 무척 행복감을 느꼈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의 수도원은 어떨까? 궁금해하며 공지영의 수도원기행 산문집을 밤새 보았다. 스물세살 때 영세를 받고 현재의 냉담자로 사는 나에게 이 책은 의미있게 다가왔다. 긴 세월 신앙적 고민도 많았고,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수도원 기행집은 나로 하여금 향수에 젖게 하고 잊었던 신의 그림자를 불러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에서 깊이 와닿던 대목. ‘신은 부드러운 눈물이자 떨림’을 다시 떠올렸고,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 향기로운 눈물과 떨림을 온몸으로 느낀 감동스런 날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때때로 살아있는 자들의 모든 말이 덧없고 멀리 있던 죽음은 가까이 다가와 나를 비춘다. 그런만큼 현실 세계는 영혼 없이 겉도는 육체와 육체로 넘친다. 한여름밤 도시는 쓰레기 썩는 냄새로 뒤덮여 뭔가 순수하고 깨끗한 곳을 꿈꾸게 하고, 바람과 같은 시간을 보내며 어떤 극도의 궁핍한 상태도 탓하지 않는 마음이 그리워서라.

삶의 막막함 속에서 하나의 등대 불빛을 만나는 삶의 변화란 어떤 것일까. 불교든 기독교든 진정한 신앙인으로서 산다는 건 일생 일대의 큰 변화일지 모른다. 18년 만의 긴 방황 끝에 신에게로 돌아가는 작가 공지영에게도 한 인간으로서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한달 간 유럽에 체류하면서 프랑스부터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 등 곳곳의 수도원을 여행하며 사진찍고, 느낀 감상들을 솔직하게 내밀하게 써내려간 책. 그녀의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동행한 여행. 유럽의 수도원 풍경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 나는 그녀의 소설보다 그녀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고,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해 그녀의 작품세계도 전과는 달라지리라는 예감을 하였다.

“정신없이 뛰어온 생에서 사소한 일상에도 멀미를 일으키던” 그녀에게 자신의 영혼을 충실히 찾아가는 축복의 기회라고 생각된다. 그녀 마음 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 비발디의 기타선율과 선율 사이를 짚고 가듯 수도원과 수도원을 통하여 얻은 단상과 그녀만의 깨달음은 단지 종교적 차원으로 끝나는 것만은 아니리라. 살아있는 자들이 구하는 질문과 답을 위한 여정일지 모른다.

그녀는 지친 사람들, 삶의 의미를 찾다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 따뜻함과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한때 삶을 미워했던 바로 작가 자신과 같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피력했다. 그녀가 책 속에서 “생각보다 생은 길고 나누어야 할 것은 아주 많다”고 한 말은 자신의 작품이 많은 묵상과 사랑으로 더 깊고 넓어지리라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혀져 반가왔다.

신현림(시인)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