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집중호우 피해 법정싸움 간다

  • 입력 2001년 7월 18일 19시 10분


“행정당국의 늑장 대응 및 관리소홀이 불러온 관재(官災).”

“기상 관측 이후 유례가 없는 천재(天災).”

지난 주말 서울 등 수도권을 강타한 집중폭우로 인한 피해를 둘러싸고 행정당국과 피해주민들 간에 ‘관재’ 논란이 끊이지 않는 등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시의 늑장 대응을 질타하는 주민들의 집단 반발이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일부 피해주민들은 법적 대응을 불사할 태세여서 관재 논란은 조만간 법정으로 번질 전망이다.


▽피해주민들 집단 반발〓서울 중랑구 중화2동 주민 100여명은 18일 오전 중랑구청 앞에서 충분한 수해보상과 책임규명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동작구 주민 40여명도 동작구청을 항의방문했다.

이에 앞서 17일 밤 12시 동대문구 주민 100여명이 국철 외대앞역 선로를 점거한 채 “배수펌프장이 제때 가동되지 않아 침수피해를 보았다”며 시위를 벌이다가 일부 주민이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수해 주민들의 집단반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집단 소송 움직임〓이번 기습폭우로 인해 감전사를 당한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집단적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움직임이어서 관재 공방은 법정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이번 수해로 인한 사망 실종자 62명 중 감전사로 추정되는 사망자는 34%에 이르는 21명.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앞길에서 숨진 윤승재씨(27) 등 3명의 유가족들은 18일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할 때 명백한 감전사”라며 “가로등 관리에 책임이 있는 국가와 지자체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윤씨의 아버지 윤직씨(56)는 “현재 3명의 유가족들이 공동으로 소송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가 나오는 대로 손해배상소송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동작구 본동에서 감전사로 숨진 이모씨(19)의 유가족 등 다른 유가족들도 속속 소송에 들어갈 태세여서 유사한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일부 침수지역 주민들의 소송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 주민들은 “이번 수해 피해가 행정당국의 관리소홀과 늑장 대응으로 커진 만큼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국가 상대 소송 사례〓최근 들어 재난의 성격을 둘러싼 행정당국과 주민간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피해주민들이 국가와 지자체를 상대로 한 소송 또한 늘어나고 있다. 84년 수해 발생시 망원동 주민들이 서울시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벌여 승소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그 후 98년 8월 서울과 경기 북부에 몰아닥친 집중호우로 중랑천이 범람하면서 피해를 본 노원구 공릉동 주민 112명이 국가와 서울시를 상대로 64억4800만원을 보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 2심에서 “국가와 서울시의 책임이 30%”라고 판결했으나 서울시는 이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

감전사와 관련해서 법원은 98년 경북 포항에서 가로등 감전사고로 숨진 사망자 유가족에 대해 지자체의 잘못을 인정해 2억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전례가 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일부 주민들의 경우 정부와 서울시가 주는 재해 보상금 자체를 거부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을 위한 수순으로 본다”고 말했다.

▽향후 소송 전망〓법정 공방이 벌어질 경우 △침수지역에서 행정당국의 늑장 대응 여부 △가로등과 신호등에 대한 행정당국의 관리 실태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특히 감전사의 경우 최근 판례에 비춰볼 때 행정당국의 관리부실에 의한 관재로 판가름날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많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의 특성상 모든 자료를 행정기관이 갖고 있어 정확한 원인규명이 힘들고 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실련 감사를 맡고 있는 이종필 변호사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의 경우 원인이 매우 복합적”이라며 “이번 감전사고의 경우 책임소재와 원인규명을 찾기 어려워 1심 진행만 1∼2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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