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시절]단역생활 중 백수역 맡고 햇볕 '쨍'

  • 입력 2001년 7월 18일 18시 39분


나는 서울예대 1학년 때인 1991년 KBS 개그맨 공채 7기로 데뷔했다. 하지만 나는 TV 출연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은 물론, 한동안 TV를 보려고도 하지않았다.

공채 동기인 김국진 박수홍 등이 데뷔하자마자 휘젓고 다닐 때, 나는 1994년말 입대 전까지 ‘포졸’ ‘지나가는 사람’ 등의 단역만 전전했기 때문이다. 방 구석에 처박혀 해가 빨리 저물기를 기다리는 날이 계속됐다.

군대에서도 이와 유사한 스트레스가 이어졌다. 영화배우 이정재가 입대 동기였는데, 나는 청소하고 있을 때 그는 고참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또 한번의 무명 증후군에 시달렸다. 하지만 언제나 당당한 이정재는 “뜨기 위해서는 자신감 뿐이다”는 것을 나에게 일깨워주기도 했다.

제대 후 다시 방송사 문을 두드렸다. 그 때는 “단역이라도 끝까지 가겠다”는 오기 뿐이었다. 그러던 중 1997년 첫 기회가 왔다.

KBS2 ‘코미디 세상만사’의 ‘남편은 베짱이’ 코너에서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백수 남편 역을 맡은 것이다. 툭하면 아내를 괴롭히고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는 역할이었다.

나는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렸던 대한민국 사내들의 속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고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길 가다가 “저 사람 백수 남편이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본격화되자 ‘백수’는 대다수 코미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됐고, 더 이상 신선할 수 없었다. 또 공백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방 구석에 있지 않았다. 각종 TV 프로그램을 모니터하면서 웃음의 트렌드를 찾으려했다. 몇 개월 TV를 보다보니 웃음의 코드가 어느 정도 느껴졌다. 구체적으로는 웃음의 소재가 우스꽝스러운 동작 등 ‘몸’에서 ‘말’로 넘어가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던 중 1999년 KBS2 ‘서세원쇼’에서 ‘토크박스’ 코너가 생겼다. 몸은 사용하지않고 오직 말로만 웃겨야했다. 내 예측은 적중했고, 다른 프로그램 섭외도 잇따랐다. 나는 그동안 가다듬은 입심을 쏟아내 대박을 터뜨렸고, 지금 3개 프로그램의 MC를 맡을 정도로 바빠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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