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리베르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비올라와 알레산드로

  • 입력 2001년 7월 18일 16시 37분


2001 아르헨티나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는 사비올라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의 세계 축구계 등장을 알리며 막을 내렸다. 작년 올림픽 예선 때만 하더라도 아이마르와 사비올라 합쳐서 2,000만불이라는 이야기가 오고 갔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사비올라 혼자서 2,600만불의 몸 값을 기록하다니,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성장 속도가 놀랍기만 하다.

한편으론, 같은 나이 때는 더 뛰어난 재능을 보이지만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지 못하고 제 자리에 머물러 있기만 하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과 비교가 되어 가슴 한 구석이 씁쓸하기도 하다.

세계 언론이 ‘사비올라’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이, 아르헨티나 언론은 사비올라의 뒤를 받쳐 주고 있는 선수들을 조명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공격형 미들필더로서 사비올라에게 쉴 새 없이 공을 배급해 주던 선수들, ‘막시밀리아노 로드리게스’, ‘레안드로 로마그놀리’ 그리고 ‘안드레스 데 알레산드로’…

결승전에서 보여준 사비올라와 이 세 선수의 움직임은 향후 세계 축구 판도를 아르헨티나가 지배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전 세계의 축구인들에게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완벽한 조직력과 수비력을 갖춘 가공할 만한 공격 파워를 아르헨티나의 어린 선수들은 보여 주었다. 페켈만 감독은 8강전 까지는 사용하지 않았던, 성인 대표팀의 공격 대형과 유사한 포메이션을 준결승과 결승에서 사용하면서 그만의 축구를 완성시켰다고까지 인정을 받았으며, 3-5-1-1이라는 3-5-2의 변형을 완성시켰고, 쉴새 없는 움직임으로 5-5-4 포메이션이라는 신조어마저 창출해 냈다. ‘95,’97에 이어 다시 한번 세계 청소년 축구를 제패한 명장으로 칭송 받고 있는 그이지만, 드림팀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화려한 멤버를 가지고도 작년 시드니 올림픽 예선에서의 탈락으로 인해 수많은 질책과 멸시를 받았던 모습을 기억하기에, 담담해 보이기만 하던 그의 표정 속에 많은 생각이 들어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위의 세 선수 중에서 기량 뿐 아니라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더욱 눈이 가는 선수가 있다. 페켈만의 죠커이자, 경기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결승전의 히어로, 장난기와 진지함이 뒤 섞인 얼굴로 결승전 그라운드를 누비며, 존재감은 사비올라를 능가했던 바로 그의 10년 지기 ‘안드레스 데 알레산드로’. 어쩌면 이번 청소년 대회는 알레산드로를 위해 주어진 무대였는 지도 모른다.

올해 5월 28일 1군 무대에 전격적으로 등장, 리그 막바지에 주전으로 뛰면서 또 다시 무너지는 리베르를 바라보던 팬들을 기쁘게 했던 알레산드로는, 이 때의 활약으로 청소년 대표팀의 주전으로 올라서게 된다. 에쿠아도르 남미 청소년 선수권 대회의 부진으로 인해 큰 폭의 선수 변동이 있었고, 18명의 로스터에 그는 당당하게 이름을 올려 놓았다. 알레산드로는 4강전과 결승전에서 페켈만의 에이스 카드로 발탁되어 게임을 지배하며 2달이 채 안 되는 순간에 무명에서 전 국민, 아니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신데렐라로서 우뚝 섰다. 오르떼가, 아이마르, 사비올라 등 수 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한 “Instituto del River Plate(리베르 축구 학교)”의 명성이 이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제 알레산드로는 사비올라와 더불어 논해진다. 10세에 처음 사비올라와 함께 리베르 유니폼을 입은 이후로 항상 함께 축구를 했었지만, 먼저 훌쩍 신들의 영역으로 올라가 버렸던 사비올라. 그러나 이번 대회를 계기로 알레산드로-사비올라 라인을 최강의 공격 루트로 각인 시키며 향후 아르헨티나 전성기를 이끌 기반을 마련했다. 자신의 패스로 사비올라가 득점을 하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사비올라의 머리를 짓누르며 쓰다듬던 몸짓을 아마도 몇 년 후면 성인 대표팀에서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페켈만 감독이 대표팀에서도 항상 붙어 다니던 이 둘의 관계를 믿고 결정적인 순간에 알레산드로-사비올라 카드를 꺼내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라운드에서 10년을 함께 한 두 선수는 게임을 지배했다.- “Juntos es mejor”(함께 일 때 더 뛰어나다) 그들이 함께 경기장에 선 순간 아르헨티나 신문은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경기가 끝난 후 어깨 동무를 하고 “Dale Campeón”(달레 깜뻬온)을 외치며 발을 구르던 알레산드로와 사비올라. 리베르에서 함께 태어나고 자란 두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서는 순간이었다.

리베르가 낳은 세계 청소년 대회의 영웅들의 모습을 보며, 하늘색 줄무늬 유니폼이 아니라 붉은색 유니폼의 신화를 꿈꾸어 보기도 하지만, 길은 너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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