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인'族 음식주문서 은행 일까지 차안서 척척

  • 입력 2001년 6월 14일 18시 53분


《자동차 1200만대 시대. 서울에서만 매일 평균 270여대의 차량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드라이브 인(Drive-in)족’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 영역도 영화 상영을 비롯해 음식 주문, 은행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음식 주문에서 은행 일까지 차안에서〓“햄버거 2개, 감자튀김, 아이스크림, 콜라요. 빨대하고 케첩, 냅킨 좀 꼭 챙겨주세요.”

9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맥도날드 파리공원점. 사업으로 늘 바쁜 오형기씨(40)는 차 안에서 주문을 한 뒤 패스트푸드점을 반회전해 계산대 앞에 차를 세웠다. 계산을 하고 주문한 음식을 받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 절약하는 데는 최고죠. 차에서 내리지 않아도 되니까 주차걱정도 없잖아요.”

오씨는 일주일이면 두세 번씩 ‘드라이브 인’ 주문을 하는 단골 고객이다. 이 가게의 드라이브 인 시스템은 매일 200여대의 자동차가 이용해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인기상품’이 됐다. 주부들의 이용이 특히 많고 퇴근시간대에는 맞벌이 부부들이 즐겨 찾는다. 시험 수준에 머무르던 이 회사의 드라이브 인 매장은 고객들의 호평 속에 최근 전국적으로 18곳으로 늘어났다.

자동차에 탄 채로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드라이브 인 뱅킹’도 최근 선보였다. 서울 서초구의 씨티은행 반포지점은 자동차의 크기에 따라 높낮이가 자동 조절되는 현금출납기를 24시간 운영하면서 고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자동차 속에서 영화를…’〓“영화가 시작됩니다. FM 주파수를 맞춰주세요.”

한낮의 폭염도 어둠 속에서 꼬리를 내린 9일 오후 8시경 남산 자동차전용극장. ‘오’와 ‘열’을 맞춘 자동차 130여대가 일제히 FM 주파수를 맞추고 영화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크린 앞쪽은 일반 승용차들, 옆쪽과 뒤쪽은 지프형 승용차 승합차 등 덩치가 큰 ‘관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형 멀티 스크린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한창이지만 극장에는 정적만이 흐를 뿐이다. 음향은 별도의 스피커 없이 카스테레오의 튜너로만 전달되기 때문. 시원한 산바람에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리는 차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손을 꼭 잡고 있는 연인들, 양념 통닭을 먹기 시작한 가족들, 좌석을 뒤로 제치고 누워서 부채질을 하는 노부부 등 자동차 안 풍경도 가지가지다. 주인의 품에 안겨 스크린을 쳐다보는 강아지 관객도 눈에 띄었다.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드네요.”

이날 두 아이를 데리고 6년 만에 극장을 찾은 이상엽씨(38) 부부. 그동안 어린 자녀들 때문에 극장과는 담을 쌓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칭얼대기라도 한다면 쏟아질 ‘비난의 시선’이 두려워 극장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 이씨는 “탁 트인 야외 극장에 오니 마치 영화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드라이브 인 문화〓‘드라이브 인’은 운전자들이 이용하기 쉽도록 마련된 시설의 총칭. 시설에 따라서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라는 말을 붙이기도 한다.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1920년대 자동차전용극장이 생긴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드라이브 인 문화’는 아직까지 걸음마 수준. 그러나 주유소와 자동세차장을 비롯, 자동차전용극장(30여곳), 드라이브 인 패스트푸드점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각 지방 자치단체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앞다투어 자동차전용극장을 세울 정도가 됐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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