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美 기회 균등 '마그넷 스쿨'制

  • 입력 2001년 6월 11일 18시 31분


서굿마셜고 학생들이 과학시간에 만든로봇 작품을 점검하고 있다.
서굿마셜고 학생들이 과학시간에 만든
로봇 작품을 점검하고 있다.
《“오늘은 곧 열릴 ‘미국 고교 로봇경진대회’에 출전할 작품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제작원리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실제로 작동해보면서 개선사항은 없는지 토론해 봅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서굿마셜고 11학년의 과학시간. 공학과 물리를 담당하는 헤닝 토머스 교사(36)는 딱딱한 이론 대신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주제를 골라 참여수업을 한다. 수업 시간에 등장한 로봇은 학생 15명이 한 팀을 이뤄 6주 동안 땀흘려 완성한 것. 로봇 제작 경비는 1만달러. 교사와 학생들은 학교 보조금을 받고 기업체 학부모 등에게 프로젝트를 설명해 조금씩 기부금을 받아 경비를 마련했다.》

▼글 싣는 순서▼

-2부 다양성이 경쟁력-
1. 한국
2. 독일
3. 프랑스
4. 덴마크
5. 미국
6. 좌담

학생들은 팀별로 로봇을 작동시키고 문제점을 노트에 적었다. ‘로봇의 팔이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는데 연결 부위를 곡선으로 만들면 어떨까’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니 모터의 성능을 높이자’는 등의 의견이 쏟아졌다. 제기된 개선점을 보안해 출품하기로 결정했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릴리아(17·여·11학년)는 “선생님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기초 원리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모두 학생 스스로 한다”면서 “과목 수준이 높아 공부에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서굿마셜고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경제 여건이 어려운 지역에 있으면서도 다른 학교에 비해 학업 성취도가 높고 대학 진학률도 70% 이상이어서 성공적인 학교로 꼽힌다.

이 학교는 94년 ‘샌프란시스코 남부지역은 주민들의 경제 여건이 어렵고 자녀들의 학력도 저조한 것으로 나타난 만큼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개설해 교육여건을 개선하라’는 법원 판결을 계기로 설립된 ‘마그넷 스쿨’ 가운데 하나다.

학생들의 출신별 분포도를 보면 이 학교의 여건을 대충 파악할 수 있다. 학생의 95%가 저소득층이 밀집한 지역 출신이며 5%는 먼 지역에서 통학하고 있다.

9∼12학년 재학생 900여명 가운데 30%가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고 소득도 낮은 흑인 가정 출신이다. 또 중국계가 30%, 멕시코계 20%, 나머지는 필리핀 베트남 한국계이고 백인은 5% 밖에 되지 않는다.

학교 이름도 1954년 ‘공립학교에서 백인과 흑인을 분리 교육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리는 등 흑인 민권운동에 크게 기여한 서굿 마셜 대법원 판사의 정신을 기려 지어졌다.

서굿마셜고 필수과목
과목학점이수기간
영어404년
수학404년
과학404년
사회303년
외국어303년
체육202년
보건·운전·대입준비101년
미술202년
컴퓨터·기술202년
리더십·연구 프로젝트50.5년
선택과목252.5년
전체280-

이 학교는 수학 과학 기술분야 과목을 중점적으로 교육시켜 학생들이 우수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특성화고교이기 때문에 교육과정을 수준별로 특색 있게 운영한다. 우수학생을 위해 우수반(Honor Class)과 최고급 과정(AP)을 개설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이 학교의 학점을 그대로 인정하기도 한다.

신입생은 성적순이 아닌 추첨으로 선발한다. 학교 인근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도 지원할 수 있다.

교감 캄 뉴옌은 “학생 학부모들이 스스로 학교를 선택했으며 교육과정도 일반 학교와 달라 책임감과 만족감이 높다”면서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동양계 학생들의 높은 교육열이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정을 보면 이 학교 학생들은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무척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공립고교는 240학점만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지만 서굿마셜고는 280학점을 졸업 학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신시아 보닐라(17·여·11학년)는 “주당 5시간 수업을 들어야 한 과목(5학점)을 이수할 수 있고 한 학기에 평균 7개 과목(35학점) 이상 수강해야 한다”며 “영어 수학 과학은 4년간 10개 과목 이상 마쳐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서굿마셜고 지토 교감 인터뷰▼

“가정형편이 부유하거나 어려운 학생 모두 질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별로 특성화된 교육을 시킬 수 있는 마그넷 스쿨이 교육여건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서굿마셜고의 매튜 지토 교감(사진)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이 보장돼 학교끼리 경쟁할 수 있어야 공교육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토 교감은 “우리는 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우수한 학생만 입도선매식으로 뽑지 않기 때문에 학교의 교육프로그램에 공감하는 학생 학부모는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보통 수준의 학생들을 받아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시킬 수 있는 학교가 최고입니다. 빈부간의 교육격차, 인종문제 등을 치유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그는 “수준별 수업 등 독특한 교육과정을 통해 어려운 가정 출신의 학생에게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며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자 입학 희망자가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입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이 학교의 ‘서굿마셜고의 학생은 이렇게 행동한다’는 학생행동수칙에 서명해야 한다. 물론 그 이후의 학생지도나 학사운영이 매우 엄격하다.

이를 반영하듯 서굿마셜고 학생들은 ‘우리는 배우기 위해 이 학교에 왔으므로 선생님의 가르침이나 다른 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학생규범을 입버릇처럼 되뇌고 교정 곳곳에도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그는 “요즘 미국에서 총기사고가 빈발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우리 학교를 안심하고 자녀를 보낼 수 있는 학교로 신뢰한다”며 “최고 학교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학생들을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하며 정서함양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혹시 있을지 모를 총기 사고 등에 대비해 교내에 무장경찰관을 상주시키고 학생 생활지도와 상담활동을 하고 있다. 지토 교감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지적인 교육환경이 학업성취도 향상에 중요하다”며 “ 학교와 지역사회가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해야 지역사회를 변모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시카고 '소프 스콜라스틱 아카데미'▼

미국 시카고의 ‘소프 스콜라스틱 아카데미’는 초등과정의 영재교육을 특성화한 마그넷 스쿨로 유치원생부터 8학년 학생들까지 가르치고 있다.

재학생 800여명 가운데 270여명은 영재교육을 받고 있다. 3학년부터 학년별로 1∼3개 학급씩 영재반을 운영하고 있다. 영재교육 프로그램 등의 영향으로 이 학교는 시카고 시내에서 최우수학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학생은 시카고시 전 지역에서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학교측은 다양한 인종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이는 소수민족이나 소외계층을 배려하도록 한 ‘차별금지법(Affirmative Action)’에 따라 학생을 골고루 선발하는 취지에서다.

소프 아카데미의 래비드 교장(여)은 “영재학급을 운영하고 있지만 모두 우수학생들로만 뽑지는 않는다”며 “지적 능력이 다른 학생에 비해 조금 떨어지더라도 흑인 등 소수계층에 일정 몫을 배당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시카고의 경우 마그넷 스쿨은 모든 학생에게 지원자격을 주되 정원의 30%까지는 학교로부터 반경 1.5마일 이내에 거주하는 학생들로 채운다. 학구 내 학생 가운데 지원자가 적으면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첨해 정원을 채운다.

통학거리가 넓기 때문에 학교에서 교통편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지만 1.5마일 이내 거주자는 스스로 통학해야 한다.

원거리 통학생도 6마일 이내에 거주하는 학생에 한해 통학버스를 탈 수 있다. 이 때문에 오전 6시반부터 통학버스를 타기 위해 집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소프 아카데미의 경우 오전 10시반이면 점심식사가 시작된다.

시카고의 33개 마그넷 스쿨 중 4개 학교만 입학시험을 치르고 나머지 학교는 컴퓨터추첨으로 뽑기 때문에 한국처럼 치열한 입시경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래비드 교장은 “영재교육을 특성화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이 자녀를 이 프로그램에 넣기 위해 무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무엇보다 학생들의 수준에게 맞는 교육을 자연스럽게 시키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옳다”고 말했다.

▼마그넷 스쿨은▼

마그넷 스쿨 프로그램은 1970년대 들어서도 시정되지 않는 인종문제, 흑백간의 심각한 사회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미국이 도입한 제도다.

미국은 경제 여건이 나은 백인과 그렇지 못한 흑인들이 다니는 학교가 따로 있을 정도로 사회문제가 심각했다. 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공공기관에서 공식적으로는 인종차별이 불법이 됐지만 교육현장에선 인종차별이 여전히 계속됐다.

교외에 사는 부유층은 질 좋은 공립학교나 값비싼 사립학교를 선택할 수 있지만 빈곤층은 선택의 여지없이 공교육에 의존해야 했다. 공교육의 질은 불신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학교를 만들면 백인 흑인 학생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부분적으로 줄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마그넷 스쿨이 태어났다.

마그넷 스쿨은 대부분 수학 과학 예술 등 특정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을 끌어들이고자 한다. 학군에 관계없이 지원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일반 교과목을 듣고 꼭 듣고 싶은 과목을 다른 마그넷 스쿨에서 수강하기도 한다. 마그넷 스쿨은 교육청에서 지정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전환을 신청하기도 한다.

도심의 열악한 교육환경에 놓인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틀에 박힌 공교육을 변화시키는 자극제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샌프란시스코·시카고〓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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