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너 죽고 나 살기'의 함정

  • 입력 2001년 6월 7일 18시 36분


마치 태풍이 제주해협을 휩쓸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든다. 북한 상선의 잇따른 영해침범사건으로 빚어진 팽팽한 긴장감이 숨가쁘게 지나갔기 때문이다. 우리측의 신중 대응으로 최악의 사태는 모면했지만, 정부의 무기력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다.

▼극한대립은 모두 망하는 길▼

일부의 신중론과 일각의 강경대응론 모두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일리 있는 주장들이다. 필자는 주장의 시비를 가리기보다 이번 사태를 극한대립이 낳을 수 있는 사회적 함정의 한 실례로 들고 싶을 뿐이다.

같은 시각 울산에서는 장기파업 중인 효성공장에 경찰력이 투입돼 농성근로자를 해산시켰고 그 중 250여명을 연행했다. 이날 울산지역 근로자 1500여명은 밤늦도록 도심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저지하는 경찰에 돌과 화염병으로 맞섰다. 돌파구 없는 노사간 극한대립은 이처럼 경찰력의 투입과 격렬한 시가전을 낳는다. 평범한 시민의 일상적인 삶의 행복은 여기저기에서 깨어지게 마련이다.

정치판의 극한대립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는 정쟁으로 돌변하고 민생문제와 주요 입법정책조차 정쟁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품위는 사라지고 험담과 폭언이 난무하는 저질의 정치에 환멸을 느낀 시민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탈출을 꿈꾸거나 집단의 힘 또는 자구적인 폭력에 의존하기 십상이다.

극한대립은 마치 제로섬 게임 같아서 전부 아니면 전무이다. 거기에서는 공존상생할 수 있는 중간쯤의 가능성에 대한 배려가 설자리를 얻기 힘들다. 중동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폭탄테러와 가차없는 응징의 악순환 속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평화공존의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숨고르기를 위한 신중과 인내를 먼저 보여줄 때 대화의 실마리가 잡힐 수 있을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용기는 즉각적인 힘의 보복이 아니라 격노하는 민중의 감성 속에서 인내의 닻줄을 끌어당기는 대화적 이성이다. 북한 상선의 잇따른 제주해협 침범사건에서도 우리 정부와 군사력 안에 자리잡고 있는 이 같은 이성의 그루터기가 돌발적인 극한상황을 진정시켰다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극한대립의 와중에는 앞이 안 보이는 희뿌연 현재만 있을 뿐 공동체의 과거와 미래조차 실종되고 만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켜 주는 원칙과 기본 가치질서가 파괴되고 현재의 이해타산과 이익추구에 혈안이 되기 일쑤이다.

의료분쟁의 극한대립 속에서 우리는 전문직업인의 자존심과 생존권 투쟁 그리고 정부의 정책 관철을 위한 오기는 보았어도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가치의 존귀성, 국민의 건강보건과 같은 보편가치를 앞세운 목소리를 듣기는 힘들었다. 수년전 IMF체제위기 출발지점에서 장차 다가올 고통을 10년이 넘도록 견뎌내야 극복할 수 있으리라던 전망을 우리는 최근 너무 쉽게 앞당긴 듯한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인내심은 사라지고 현재의 불평등과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에 집단적 반발이 거세어지는 것은 눈앞의 정치적 이익만 계산하여 미래전망을 장밋빛으로 각색한 얄팍한 정략들이 빚어낸 자업자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극한대립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사회적 기회비용을 증대시키고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회적 함정노릇을 한다. 극한대립 속에서는 이성을 통한 대화절차가 무너지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 버린다. ‘다 좋지만 너만은 안돼’라고 고집하는 대립 속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공식을 도출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남 배려하며 공존을 얘기하자▼

지금 한반도 전체가 극심한 가뭄으로 목이 타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의 터전인 여기 갈라진 땅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삶의 터전에서 갈라진 것은 문전옥답만이 아니라 공동체적 심성으로서의 연대감이다. 극한대립을 넘어 사회통합의 지평으로 나가려면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서서 먼저 자신을 되돌아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사용자와 근로자, 여당과 야당, 이익집단과 이익집단, 가는 물줄기를 두고 말라버린 농심, 그리고 남과 북 모두에게 공동체를 열어갈 지혜로운 인내가 아쉽다. 위대한 법철학자 라드브루후의 말처럼 ‘인내가 문화의 어머니’란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김일수(고려대교수·법학·본지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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