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증' 강조한 미국의 대북정책

  • 입력 2001년 5월 27일 18시 34분


지난 주말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3자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에서 그 윤곽이 드러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그동안 전문가들이 예측해왔던 대로 향후 북-미(北-美) 대화가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다음달 중으로 북한과의 대화는 재개하겠지만 핵 미사일 등 현안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 단계별로 엄격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전달했다.

아직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과정이 남아 있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과는 매우 다를 것이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포괄적 상호주의 제안도 거의 반영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이제 분명해졌다. 한마디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기존의 ‘페리 프로세스’를 사실상 폐기하고 북한에 ‘당근’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단계별, 사안별로 철저하게 검증을 거치는 방식이 될 것 같다.

미국은 이번 회의에서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과 남북대화 노력을 지지하면서 앞으로 한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겠다는 원칙은 되풀이했다. 그러나 미 대북정책의 전반적인 기조가 애초의 강경론에서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 정부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더욱이 미국측 수석 대표인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기자회견에서 기존의 핵 미사일 문제 이외에 북한의 재래식무기 감축 문제도 제기했다. 재래식무기 감축은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문제다. 이에 따라 향후 북-미대화의 길은 험난할 것이고, 한국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한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대화에 나서게 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한편 대북 강경책을 견지하는 미국과의 정책공조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측 대표도 말했듯이 공은 이제 북한으로 넘어갔다. 미국이 대북 협상에서 클린턴 행정부 시절처럼 ‘버릇없는 아이 달래는 식’으로는 하지 않겠다는 게 분명해진 만큼 북한도 이제 상대방을 위협하고 떼를 쓰는 식의 협상행태를 바꿔야 한다. 북한이 과거의 행태를 되풀이하며 시간을 끌수록 그로 인한 부담은 더 커질 뿐이다.

북한은 또 남북대화를 북-미대화에 연계시키는 전략을 버리고 남북대화에 적극 응해야 한다. 그것만이 북한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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