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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2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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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 출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영화속 사투리의 뜻을 설명해줘야했기 때문이다. 남자들 세계를 다룬 영화여서인지 서울 출신의 한 여성은 “대사의 3분의 2밖에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정도였다. 사투리도 사투리지만 정서상 낯선 부분이 많았다는 얘기였다.
경상도 사람들은 영화속 유명한 대사 “고맙기는, 친구 아이가”를 대표적인 예로 들며 그 곳 정서를 설명한다.
“이 말은 ‘친구로서 당연한 일을 한건데, 뭘’ ‘친구끼리는 고맙다는 말 하는거 아니다’ 등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경상도 사람들은 이러쿵 저러쿵 길게 얘기 안한다. 몇 마디면 충분하다. 짧게 말해도 이심전심으로 다 통한다.”
한반도처럼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이렇게 설명이 필요할 정도로 지역마다 정서가 다르고 말이 다르고 표현 방식이 다른 모양이다.
최근 한 증권정보 제공업체가 전국을 돌면서 가진 투자설명회에서도 지역별로 특색이 제각각이었다고 한다.
먼저 서울. 강사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우스갯 소리를 하면 참석자들은 ‘적극적으로’ 웃어준다. 그 강사는 “무슨 얘기든 즉각 반응을 해줘서 얘기를 풀어나가기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경남 창원. 강사가 농담을 해도 반응이 없다.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짧게 본론만 얘기하라’는 표정이었다는 것. 강연진이 가장 환대를 받은 곳은 제주시. 투자자들이 ‘육지’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기대에 가득차 있었다는 것이다.
광주는 참석 인원수가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적었다는 점이 특징. 업체 관계자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소신대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라고 해석했다. 대전은 서울과 가까워서인지 비슷한 반응이었다고.
강연이 끝난 다음의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서울 사람들은 한꺼번에 강사에게 몰려들었다. 다른 사람이 듣던 말던 자신이 갖고 있는 종목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반면 제주 투자자들은 한 사람이 강사와 종목을 상의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들은 근처에도 가지 않고 멀찍이서 기다렸다. 창원 투자자들은 종목을 딱 꼬집어 물어보진 않고 전반적인 시장 상황만 대충 물어보고 자리를 떴다.
이렇게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면서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고 이 업체 관계자는 말한다. 노골적이건 은근슬쩍이건 모두들 ‘대박’ 종목을 찍어주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는 것. 이 관계자는 “기업의 실적이 중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떤 종목을 선택하는게 좋다는 설명보다는 단박에 뜰 종목을 찍어주기만 바라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털어놨다.
경상도 출신인 그 관계자의 마지막 한 마디가 떠오른다.
“그런 분위기를 보믄 맥이 탁 풀리갖고…, 투자자들한테 무신 죄가 있겠십니까. 증권사든, 우리같은 정보 업체든, 그런 분위기를 조장해온 사람들이 문제지예.”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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