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시절]김승우,<장군의 아들>오디션에 지원

  • 입력 2001년 5월 2일 18시 40분


나의 데뷔작은 임권택 감독님의 <장군의 아들>이었다. 당시 수원대 체육학과 3학년이던 나는 몸무게가 93㎏나 나가던 거구에 연기 경험도 없었다. 그런 내가 1989년 8월18일 <장군의 아들>의 주연 및 조연배우 공모에 문을 두드린 것은 꼭 배우가 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임권택 감독의 작품에 참여하고 싶은 일념 때문이었다.

고교 2학년때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을 본 뒤로 내 꿈은 영화감독이었는데 배우로 뽑히게 되면 영화감독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배우공모에서 내가 박상민 신현준 이일재 등과 함께 뽑힐 수 있던 것은 “나를 안쓰면 후회한다”고 반협박, 반아부로 떼를 쓴 덕분이다. 임감독님께서도 영화촬영에 들어갈 때 “너처럼 뻔뻔한 놈은 처음 봤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내게 돌아온 역은 ‘쌍칼’이란 별명의 김두한의 선배역이었는데 예상 밖으로 주연 조연할 것 없이 43명에게 똑같이 100만원의 출연료가 주어졌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임감독님을 보면서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영화 촬영이 너무 재미있어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는 촬영이 끝난 뒤 따로 녹음을 했는데 43명의 동기 중 나만 유일하게 성우가 아니라 내 목소리로 더빙을 했다. 정일성 촬영감독님도 내게 몸무게만 빼면 멜로배우로 대성할 자질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후 나는 1년간 20㎏을 빼 지금의 몸매를 만들었고 구강구조 때문에 발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볼펜을 물고 밤새 소리내 책을 읽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첫 주목을 받은 것은 1993년작 <101번째 프로포즈>에서 문성근 선배의 동생역을 맡으면서였다.

당시 나는 영화계에 학연 지연 혈연 아무 것도 없는 신세였지만 언제가 기회는 온다는 신념을 갖고 꾸준히 준비를 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이미연의 남편'이라 떴다고들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면 이름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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