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가 손가락질 받는 이유

  • 입력 2001년 4월 29일 18시 51분


여야가 개혁입법 처리 먼저냐, 국무총리 해임안 표결 우선이냐를 놓고 30일까지인 4월 임시국회 회기를 하루 남겨놓은 주말까지 힘 겨루기를 거듭했다. 그 속사정을 살펴보면 서로가 상대를 믿지 못하는 불신 때문이요, 쌍방의 정략 때문이다. 법안이나 정책을 둘러싼 생산적인 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국민의 지탄을 면키 어렵다.

여당은 인권법 반(反)부패기본법 돈세탁방지법 등 3대 개혁입법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하자는 명분으로 야당을 압박하면서 야당의 해임안 공세에 대해서는 ‘상생(相生)정치에 반하는 정치공세’라며 그 표결을 시늉만으로 지나가고자 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총리 해임안 표결을 통해 여권에 일격을 가하고 3당 정책연합 구도를 흔들며, 한편으로 ‘야당 탄압’의 빌미가 될 우려가 있는 돈세탁방지법 입법을 회피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것이 개혁입법과 해임안중 어느 쪽을 본회의에서 먼저 처리하느냐 하는, 얼른 보기에 지엽말단의 문제를 놓고 기세 싸움을 벌인 이유라니 국민이 보기에 안타깝기 짝이 없다. 여야 서로가 일방이 내세우는 주장만 처리해 버리고 상대측이 제기하는 것은 외면하고 본회의장을 떠날 것이라며 상대를 몰아세운다.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가 이런 식의 불신과 당략 투쟁으로 지샌다는 말인가.

여야가 국민의 눈을 의식하고 정직한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법사위의 격돌이라든가, 본회의의 볼썽 사나운 파행은 또 한번 국민을 실망케 할 뿐이다. 모양새 있는 합의, 당당한 표결로 의회다운 의회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돈세탁방지법을 둘러싸고 ‘야당탄압 우려’를 내세워 반대하는 것은 명분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자세도 떳떳하지 못하다. 한나라당은 이 법의 처리를 여당과 합의했다가 뒤늦게 의원총회에서 반발하는 소리가 나오자 번복한 것이다.

97년 정부가 낸 돈세탁방지법안에도 정치자금은 포함되어 있었고 정치인들의 외면으로 이제껏 표류해온 이 법이 가까스로 입법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계좌추적권이 정권의 야당 돈줄 뒤지기에 악용될 것’이라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그런 야당의 우려는 한국적 정치 상황과 영장 없는 계좌추적이 남발되는 현실에 비추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악용의 소지가 없도록 다각적인 방책을 강구해야지 이 법 자체를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