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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4월 27일 19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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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 나의 기억이다. 만약 기억이 없어진다면? 혹은 기억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면?
윤대녕씨(39)의 신작 소설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디지털 시대에서 기억과 존재의 관계다.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 시청 지하철역에서 깨어난다. 왜 그 곳에, 얼마나 쓰러져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모든 소지품도 사라졌다.
이야기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억상실증이란 낯선 상황에서 출발해 급류를 탄다. 방황하던 시청 주변에서 만난 라면요리사 서하숙. 그녀의 제안으로 ‘그’는 유령회사를 통해 이명구란 사람의 기억을 이식 받는다.
이것은 ‘신용카드나 백화점 카드를 잃어버리고 나서 재발급 받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일’(56쪽)이다.
하지만 ‘그’는 기억 이식 후 감정의 불안을 느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에게 세상은 “전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속에 갇혀 있는 것”(122쪽) 같다. 무의식 결에 기억의 원주인을 찾아 나선다.
이명구의 약혼자 차수정. 그녀를 만나 이명구가 차수정의 간통을 목격하고 불륜의 현장에서 자살했음을 알게 된다. 유산처럼 ‘그’에게 의탁되어진 이명구의 기억에는 애인에 대한 살해충동이 담겨 있었던 것도.
애인의 죽음 뒤 ‘사이보그’처럼 마음을 잃어버린 차수정은 ‘소멸’되어지길 원했다. 그래서 ‘그’에게 ‘OFF 스위치’를 눌러줄 것을 요구한다.
“제게 삶은 늘 광고 전단지 같은 거였어요. 늘 사람들 손에 구겨져 쓰레기통에 버려지곤 했죠. 죽음으로 삶을 계속하겠어요.”(153쪽)
차수정이 스스로 소멸을 택한 그 날 밤, ‘그’는 서하숙의 어깨에서 사슴벌레 문신을 발견한다.
혼돈스러운 ‘그’가 우연히 거리에서 직장동료를 만난다. 정교하게 이야기의 시점은 ‘나’로 바뀐다(14장).
‘그’는 나이와 이름, 가족을 알게 됐지만 기억은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다. 정체를 모르는 ‘나’란 결국 ‘그’일 뿐이다.
과연 ‘그’ 혹은 ‘나’의 선택은 무엇인가? 타인의 기억을 안고 살아야 할 불안정한 현실을 애써 거부하지 않는 것이다. ‘환상으로 변한 기억을 끌어 안고 그 누구도 아닌 제3의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다.’(201쪽)
인간의 감수성도, 기계의 냉정함도 갖지 못한 어정쩡함. 그것이 ‘한갓 낡은 실처럼 쉽게 끊어져 버리는 기억’(189쪽)을 갖고 살아가는 고독한 ‘사이보그’들의 운명인 것이다.
윤대녕씨의 다섯번째 장편소설은 변신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투영됐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이미지보다는 스토리, 자연에 대한 묘사 대신 대화 중심의 이야기로 무게 중심이 바뀐 것이 쉽게 느껴진다.
이에 대해 윤대녕은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남진우)라는 오래된 꼬리표를 떼고, 이제는 시대의 정체성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창작의 욕망을 느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자아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 그가 애용하는 ‘여행’과 ‘기억’의 모티브가 여전히 사용된 점, 팝송 넘버 등 도회적 문화 기호가 곳곳에서 반짝이고 있는 점 등은 21세기의 윤대녕이 20세기의 윤대녕과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징표로 보인다. 편집용(윤대녕 사진 위에 넣어주십시요)
당신에게 만약
이름이 없다면
역사가 없다면
책이 없다면
가족이 없다면
당신이 만약
벌거벗긴 채 잔디 위에 누워 있다면
그럼 당신은 누구라고 해야지?
이것은 그가 던져왔던 질문
난 정말 모르겠다고 했어
아마 좀 차가워질 거라고 했지
난 지금 얼어가고 있어
얼어가고 있어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노래 ‘프리징’(115쪽)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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