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정병철/'빨리빨리' 문화속에 경쟁력 있다

  • 입력 2001년 4월 27일 18시 32분


경제가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우리 경제도 적지않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산적한 내부 현안에 세계경제 침체라는 외풍까지 겹치면서 올해 성장률은 4%대에 머물 것이라고 한다. 위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우리는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그리고 외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다만 무엇으로 우리의 경쟁력을 삼을 것인가가 항상 숙제였다.

한국병 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병 의 증상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곤 한다. 무엇이든지 서두르고 대충대충 처리하기 때문에 부실을 낳는다는 뜻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빨리빨리 가 대충대충 으로 끝날 때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치기 어려운 단점으로 지적돼온 한국병을 장점으로 활용해 경쟁력을 높이는 원천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은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한미상공회의소 제프리 존스 회장은 저서에서 나는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인처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등 다른 나라에서라면 5∼10년은 족히 쓸 물건도 한국에서는 1∼2년만 지나면 골동품이 된다. 한국 사람들은 그만큼 변화에 익숙하며 변화를 좋아하고 또 즐기기까지 한다 고 말했다. 그는 변화를 즐기기까지 하는 한국인의 태도야말로 디지털시대인 21세기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실제로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상용화하지 못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나라도 한국이다. 매일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살아가는 민족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이처럼 변화를 즐기는 민족이기에 빨리빨리 가 습관처럼 몸에 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빨리빨리 는 디지털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성의 하나인 스피드와 통한다. 한국이 인구 대비 초고속 인터넷 사용률 세계 1위에 독특한 PC방 문화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빨리빨리 에서 비롯된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디지털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을 한국병 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변화를 주도하고 남보다 앞서 뛰는 나라가 세계사의 주역으로 부상한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빨리빨리 가 대충대충 이 아니라 변화와 스피드라는 경쟁 요소로 승화할 때 우리는 디지털시대의 주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한국병이라는 말에 담긴 소극적인 자조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갖고 21세기를 헤쳐나가야 할 때다. 그것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또 하나의 지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병철(LG전자 사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