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파이란>의 최민식과 송해성 감독

  • 입력 2001년 4월 26일 18시 47분


최민식(왼쪽)과 송해성 감독.
최민식(왼쪽)과 송해성 감독.
길을 걸어온 두 사내의 눈빛은 허전해 보였다. 28일 개봉될 ‘파이란’의 주연배우 최민식(39)과 감독 송해성(37). 최민식은 시사회 내내 속으로 ‘잘 가거라 영화야, 이제 너는 관객들 것이구나’하고 고별 인사를 했다던가.

‘파이란’은 누가 봐도 ‘최민식의 영화’다. 연기생활 11년. 이제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최민식은 ‘파이란’에 이르러 자기안에 고여왔던 모든 열망과 응어리를 다 쏟아붓는다.

송해성 감독이 ‘파이란’에 도달하기까지 행로는 참담했다. 첫 영화 ‘카라’가 흥행에 참패하고 혹평을 받은뒤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할 줄 알았다고 했다. 오락실에서 경품이라도 하나 뽑아보려고 9시간씩 쭈그리고 앉아있던 남루한 세월을 견딘 뒤 그는 “진정한 데뷔작”인 ‘파이란’을 갖게 됐다. 고교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두 사람에게 ‘파이란’ 제작 후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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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성〓처음에 영화사에서 최선배가 캐스팅됐다는 말을 듣고 내가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던 거, 알아요? 최선배는 감독이 나라는 말을 듣고 갑갑하셨겠지만….(웃음)

최민식〓나도 ‘카라’를 봤어. 나는 감독이 배우에게 자기 영화에 대한 확신을 보여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네가 ‘파이란’에 대해 갖고 있는 확신이 보였지.

송〓‘파이란’이 이미 죽어버린 여자 파이란과 양아치 이강재의 뒤늦은 사랑을 그렸지만, 사실 나는 멜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최〓나도 그래. 남녀가 ‘너 죽네, 나 죽네’하는 연애담이 아니라,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 구원받고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 구원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어.

송〓죽은 파이란이 남긴 편지를 들고 강재가 바닷가에서 꺽꺽 울음을 토해내는 장면 있잖아요. 그것도 처음엔 울지 않고 구토하는 것으로 찍으려 했어요. 나같은 인간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양아치가 자기자신을 모두 토해낸다는 느낌….

최〓그러다 니가 그랬잖아. “안되겠다, 형! 한 번 웁시다”하고. 나도 한 번 울어야 될 것같다는 생각을 하던 때였거든. 우와∼, 격투 씬 찍는 것보다 힘들더만. 서럽게 한 번 울고 나면 기운이 쫘악 빠지는데, 하루 종일 다섯 번이나 그렇게 울었으니….

송〓‘파이란’의 결말이 원작인 일본소설(아사다 지로의 ‘러브 레터’)과 다르잖아요. 세상이 강재같은 인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결말을 바꿨거든요.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최〓나도 동의해. 만약 강재의 10년후를 생각해본다면, 한동안 반성하다가 금방 또 골목대장하면서 철딱서니없이 살지 않았을까.(웃음) 사람은 잘 안변하지만, 그래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게 중요하지. 나는 이 영화가 비극이 아니라 모든 절망한 자들이여, 희망을 갖자, 냉소하지 말고 뭘 좀 느끼면서 살자는 ‘권유’라고 생각해.

송〓최선배는 ‘냉소’와는 거리가 멀잖아요. 나는 정말 선배의 열정이 인상 깊었어요. 새벽 7시에 집합할 때도 1시간 먼저 오고, 촬영 끝나면 전부 철수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최〓그렇게 안하면 먹고 살기 어려우니까.(웃음)

송〓나도 잘 모르는 스탭들 이름까지 다 기억해 이름을 한 번씩 다 불러주는 거 보고 놀랐다니까요.

최〓프로들과 일하는 게 좋았어. 다들 피곤할 때 아마추어들은 투정을 부리겠지만 프로들은 내색 안하잖아. 나는 네가 연출부 막내들의 의견까지 진지하게 듣는 거 보고 놀랐는 걸. …야, 근데 이런 이야기는 소주 한 잔 하면서 해야 되는 거 아냐?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파이란 줄거리]

변변찮은 3류 건달 강재(최민식)는 보스 대신 감옥에 들어가야 할 처지에 놓인 어느날, 난데없이 “아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순전히 돈 때문에 중국에서 온 여인 파이란(장바이츠·張柏芝)과 위장결혼을 해주었는데, 파이란이 숨진 것.
만난 적도 없는 아내의 장례를 치르러 간 강재는 파이란의 흔적을 좇으며 평생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사랑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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