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란’은 누가 봐도 ‘최민식의 영화’다. 연기생활 11년. 이제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최민식은 ‘파이란’에 이르러 자기안에 고여왔던 모든 열망과 응어리를 다 쏟아붓는다.
송해성 감독이 ‘파이란’에 도달하기까지 행로는 참담했다. 첫 영화 ‘카라’가 흥행에 참패하고 혹평을 받은뒤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할 줄 알았다고 했다. 오락실에서 경품이라도 하나 뽑아보려고 9시간씩 쭈그리고 앉아있던 남루한 세월을 견딘 뒤 그는 “진정한 데뷔작”인 ‘파이란’을 갖게 됐다. 고교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두 사람에게 ‘파이란’ 제작 후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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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성〓처음에 영화사에서 최선배가 캐스팅됐다는 말을 듣고 내가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던 거, 알아요? 최선배는 감독이 나라는 말을 듣고 갑갑하셨겠지만….(웃음)
최민식〓나도 ‘카라’를 봤어. 나는 감독이 배우에게 자기 영화에 대한 확신을 보여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네가 ‘파이란’에 대해 갖고 있는 확신이 보였지.
송〓‘파이란’이 이미 죽어버린 여자 파이란과 양아치 이강재의 뒤늦은 사랑을 그렸지만, 사실 나는 멜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최〓나도 그래. 남녀가 ‘너 죽네, 나 죽네’하는 연애담이 아니라,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 구원받고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 구원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어.
송〓죽은 파이란이 남긴 편지를 들고 강재가 바닷가에서 꺽꺽 울음을 토해내는 장면 있잖아요. 그것도 처음엔 울지 않고 구토하는 것으로 찍으려 했어요. 나같은 인간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양아치가 자기자신을 모두 토해낸다는 느낌….
최〓그러다 니가 그랬잖아. “안되겠다, 형! 한 번 웁시다”하고. 나도 한 번 울어야 될 것같다는 생각을 하던 때였거든. 우와∼, 격투 씬 찍는 것보다 힘들더만. 서럽게 한 번 울고 나면 기운이 쫘악 빠지는데, 하루 종일 다섯 번이나 그렇게 울었으니….
송〓‘파이란’의 결말이 원작인 일본소설(아사다 지로의 ‘러브 레터’)과 다르잖아요. 세상이 강재같은 인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결말을 바꿨거든요.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최〓나도 동의해. 만약 강재의 10년후를 생각해본다면, 한동안 반성하다가 금방 또 골목대장하면서 철딱서니없이 살지 않았을까.(웃음) 사람은 잘 안변하지만, 그래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게 중요하지. 나는 이 영화가 비극이 아니라 모든 절망한 자들이여, 희망을 갖자, 냉소하지 말고 뭘 좀 느끼면서 살자는 ‘권유’라고 생각해.
송〓최선배는 ‘냉소’와는 거리가 멀잖아요. 나는 정말 선배의 열정이 인상 깊었어요. 새벽 7시에 집합할 때도 1시간 먼저 오고, 촬영 끝나면 전부 철수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최〓그렇게 안하면 먹고 살기 어려우니까.(웃음)
송〓나도 잘 모르는 스탭들 이름까지 다 기억해 이름을 한 번씩 다 불러주는 거 보고 놀랐다니까요.
최〓프로들과 일하는 게 좋았어. 다들 피곤할 때 아마추어들은 투정을 부리겠지만 프로들은 내색 안하잖아. 나는 네가 연출부 막내들의 의견까지 진지하게 듣는 거 보고 놀랐는 걸. …야, 근데 이런 이야기는 소주 한 잔 하면서 해야 되는 거 아냐?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파이란 줄거리]
변변찮은 3류 건달 강재(최민식)는 보스 대신 감옥에 들어가야 할 처지에 놓인 어느날, 난데없이 “아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순전히 돈 때문에 중국에서 온 여인 파이란(장바이츠·張柏芝)과 위장결혼을 해주었는데, 파이란이 숨진 것.
만난 적도 없는 아내의 장례를 치르러 간 강재는 파이란의 흔적을 좇으며 평생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사랑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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