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관치에 발목잡힌 경쟁력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40분


“한국의 경제자유도는 우간다 헝가리와 같은 수준이다.”(19일 미국 케이토연구소)

“한국은 장기침체에 빠진 일본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쫓아가고 있다.”(23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한국경제의 경쟁력에 대한 외국 전문가들의 평가는 충격적이다.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기관의 분석을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 요약하자면 한국의 현 주소는 ‘약점을 고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일본의 나쁜 점만 닮다가 회생의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딱한 나라’다.

‘외환위기의 최단기간 극복’이라는 성과에 도취된 사이에 한국을 보는 외부의 시각은 이렇게 싸늘해졌다.

보고서에서는 그 흔한 외교적 수사도 찾아보기 힘들다. IMD는 “한국의 기업경영환경은 싱가포르 대만 호주 등과 경쟁할 수 없는 수준까지 처졌다”고 일침을 놓았다.

당연히 시장 환경의 조성자이자 감시자인 정부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책 당국자들이 낮은 점수를 받은 것에 속상해 하거나 원인 찾기에 나섰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4대 그룹 계열사의 한 임원은 “정부 입김이 커지고 기업 의욕을 꺾는 조치가 계속 나오는데 순위가 높아질 리 있겠느냐”며 “기분은 나쁘지만 수긍이 가는 평가”고 말했다.

신문고시 부활과 일관성 없는 기업 조사 등 관치형 정책의 남발이 한국에 대한 평가를 떨어뜨린 최대 요인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70, 80년대 경제정책이 특정 기업만 잘 되도록 밀어주는 ‘관치 차별화’였다면 지금은 정부가 앞장서서 모든 기업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관치 평등화’의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국가경쟁력을 높일 최선의 처방은 정부 개입의 자제와 시장경제 정신의 존중이다. 한국의 참담한 경쟁력 점수는 ‘관치 경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숙제를 남겼다.

박원재<경제부>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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