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맛있는 수다]비빔밥의 이미지변신 촉촉한 비빔밥!

  • 입력 2001년 4월 16일 14시 19분


전 비빔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빔밥? 하면 왠지 노처녀, 선보러 나가서 얌전빼며 밥 콩알만큼 먹고 들어와 이따만한 양푼 껴안고 우적우적 밥 비벼먹는 그림이나, 남편한테 얻어터져 눈에 멍 시퍼렇게 든 아줌마가 눈물 뚝뚝 흘리며 밥을 비벼 아구아구 쑤셔넣는 그림이 떠오른단 말이죠. 아마 TV 드라마에 나오는 비빔밥 먹는 여자들의 인생이 다 그렇고 그래서(?) 비빔밥! 하면 꿀꿀한 이미지가 찰싹 달라붙어 있나봐요. 그래서 맛있게 비빔밥을 먹으면서도 “아, 참 아줌마의 인생은 허망한 것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이런 저런 이유로 전 비빔밥을 별로 만들어 먹지 않는 편이지요. 괜히 처지 우울하게 만들 필요도 없고, 밥을 비벼 먹으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먹게 되기 때문에 배만 볼록 튀어나와 더 짜증나곤 하거든요. 무엇보다 비빔밥에 넣을 나물 등 밑반찬이 저희 집엔 없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비빔밥은 이것저것 반찬 그릇을 죽 늘어놓을 필요없이 간단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아주 효과적인 냉장고 청소법이 되기도 합니다. 제사 지내고 난 뒤 남은 숙주나물, 도라지 나물, 고사리 나물...엄마가 싸주신 시금치 나물...그냥 반찬으로 먹으려면 젓가락 한번 안가는 처치곤란한 나물들이 밥과 고추장과 어우러지면 아주 맛있는 비빔밥의 재료가 되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 전 너무너무 맛있는 비빔밥을 먹었답니다. 이름하여 “냄비 비빔밥”이라나? 노란 양은 냄비에 밥과 나물을 잔뜩 넣고 비벼먹는 건데 저의 비빔밥에 대한 가지가지 편견을 순간적으로 까먹게 할 만큼 맛있었어요.

알뜰주부가 그냥 먹고 나올 수 있나요? 그 맛의 비결을 정밀 분석했더니만...밥이나 나물 등 다른 재료는 평범한데 이게 웬 일? 비빔밥에 두부가 들어갔더군요. 손두부를 툭 썰어 넣어 같이 비비는 거예요. 두부가 들어가니까 참기름이나 콩나물 국물을 넣지 않아도 밥이 아주 촉촉하고 부드럽더라구요. 또 두부의 고소한 맛이 은은히 배어나와 훨씬 맛있구요. 이게 비법이 아니고 뭐겠어요? 물론 이젠 찾아보기도 힘든 노오란 양은냄비에 비벼먹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지만.

어젠 집에서 그 비빔밥을 만들어 보았답니다. 각종 나물이 없어서(있을 턱이 없죠...) 장조림이랑 김치 잘게 썬 거랑, 멸치볶음, 오이를 넣고 아쉬운 대로 김을 아낌없이 부스려 넣었습니다. 손두부도 동네에선 사기 힘들어서 연두부를 넣었습니다. 비빔밥은 고추장 맛이라는데 친정에서 뺏어온 순창 고추장이 꽤 맛있더라구요. ‘콩나물이라도 있었으면 더 맛있었을텐데...’ 아쉽기도 했지만 어쩌겠어요? 냉장고를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그게 전부인 걸...

그런데 이상한 건 비빔밥은 혼자 먹으면 그렇게 비참하고 꿀꿀할 수가 없는데 남편이나 친구랑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맛있고 재미있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아마 비빔밥은 태생이 “정답게 오손도손 ” 먹으라고 만들어진 건데 시간이 흘러흘러~ 부엌 구석에서 양푼을 껴안고 먹는 음식으로 변질된 건 아닐까요?...

***촉촉한 비빔밥 만드는 법***

재 료 : 밥, 고추장, 참기름, 김, 손두부 1/4모, 콩나물, 시금치나물, 무생채, 도라지나물, 장조림, 콩자반 등 각종 나물과 밑반찬... 취향에 따라 계란 첨가

만들기 : 1. 큰 그릇에 밥을 담고 나물과 밑반찬을 돌려가며 담 는다

2. 손두부를 큼직하게 썰어 넣는다

3. 취향에 따라 계란을 프라이해서 얹는다

3. 김을 충분히 부스려 뿌린다

4. 고추장은 따로 담아낸다

5. 힘껏 비벼서 맛있게 먹는다!

PS. 각종 나물과 밑반찬 만드는 법은 인터넷 요리 사이트들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드리자면 친정과 시댁의 냉장고를 맘 잡고 뒤져보는 거예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먹을 거리들이 나오는데다 “이거 뭐예요? 진짜 맛있다!”하면 맘좋은 어머니들, 듬뿍듬뿍 싸주신답니다. 저도 이렇게 살긴 싫지만 먹고 살려니...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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