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월드]장기불황 日쇼핑가 두 얼굴

  • 입력 2001년 4월 13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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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東京)의 거리 풍경 하나.

쇠고기덮밥 체인점 요시노야에서는 지난주초 손님을 되돌려보내느라 직원들이 진땀을 흘렸다. 평소 400엔(약 4300원)짜리 쇠고기덮밥을 250엔(약 2700원)에 할인판매하자 예상 외로 손님이 쇄도한 것. 주문폭주로 쇠고기나 포장용기가 바닥나는 바람에 도쿄 15개점은 아예 하루이틀씩 문을 닫고 영업을 중단하는 등 전국 100여개점이 혼란을 겪었다.

할인기간인 4∼10일 판매한 쇠고기덮밥은 1000만 그릇. 단순계산으로만 국민 13명 중 한명이 요시노야의 쇠고기덮밥을 먹은 셈이다. 손님은 평소의 3배, 매출은 2배로 늘었다. 7일 하루 동안만 전국 770개점에서 5억엔(약 55억원)어치를 팔았다.

도쿄에선 이와 비슷한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불황의 골이 더 깊어지면서 상점들은 앞다투어 가격인하 경쟁을 벌이고 손님들도 단돈 10엔이라도 더 싼 물건을 찾느라 혈안이다. 덕분에 소비자물가는 95년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거리 풍경 둘.

긴자(銀座)에 있는 루이뷔통 전문점에는 언제나 20∼30대 여성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지난해 11월 오픈한 이 점포는 주말이면 손님이 너무 많아 경비원이 출입구를 막고 입장을 통제할 정도. 문을 나서는 고객 손엔 10만엔(약 107만원)이 넘는 핸드백이 들려 있다.

지난해말에는 문 앞에 100여명이 줄을 서 기다리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전후에는 이 점포에서만 하루 평균 5000만엔(약 5억4000만원)어치를 팔았다. 지난해 일본에서 팔린 루이뷔통은 1000억엔(약 1조700억원)을 넘어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샤넬 에르메스 구치 등 세계 일류 브랜드 매장도 사상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이런 가게에서는 일본이 불황이라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푼돈에 벌벌 떠는 사람들과 세계적인 사치품을 턱턱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다를까. 결론부터 말하면 동일인물이다. 부자건 가난하건 모두들 일상생활에서 극도의 절약을 하는 동시에 사고 싶은 고급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소비생활을 뒷받침하는 게 세계 최고수준의 저축률이다. 일본의 개인저축률은 98년기준 13.4%로 같은해의 미국 0.5%, 영국 3.1%, 독일 11.0%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가구당 금융자산은 3070만엔(약 3억3000만원)이나 된다.

10년 불황에 지쳐온 일본인들은 개인소득이 크게 줄어든 때문이 아니라 금융위기 등에 대한 불안감 탓에 소비를 줄이고 있다. 이를 반영해 최근 저축홍보중앙위원회가 “더 이상 저축만이 미덕이 아니다”며 이름을 금융홍보중앙위원회로 바꾸기도 했다.

각종 할인 광고문안이 걸린 일반상점과 호화 상품이 번쩍거리는 고급매장이 뒤섞인 도쿄거리. ‘일본식 장기불황’의 두 얼굴이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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