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1억달러 풀라" 5분만에 16원 폭락

  • 입력 2001년 4월 8일 19시 01분


"개입입니다. 1억달러 풀어주세요 "

6일 오전 11시45분 한 외국계 은행 외환딜링룸에 한국은행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날 원-달러환율은 전날보다 25.20원 떨어진 1340원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환율이 올라 오전 11시45분에 1358.50원까지 치솟았다. 외환딜러들도 당국의 환율개입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상황, 외환당국은 본때를 보여줄 기회 라고 판단했다.

개입지시를 내린 지휘부는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별관 4층에 위치한 외환딜링룸. 외환시장팀 사무실에 들어서면 팀장석 바로 옆에 출입제한구역 이란 팻말이 붙어있는 방이다. 이 곳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한은 총재를 비롯한 외환정책라인 6∼7명. 금괴를 보관하는 한은 금고는 기자들에게 공개된 적은 있지만 이 방은 지금껏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한은 이창복(李昌馥) 외환시장팀장은 이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일절 노코멘트 라고 말한다.

하지만 외환당국의 움직임은 외환딜러들에게 금방 포착된다. 한은은 시중은행 및 외국계은행들을 통해 물량개입을 한다. 한은은 은행을 골라가며 개입지시를 내린다. 한은이 선호하는 곳은 환율에 영향력이 큰 외국계은행. 딜러들은 개입내용 을 비밀에 붙이도록 서약서까지 쓴다. 그러나 시장은 당국의 개입사실을 금새 눈치챈다. 환율이 오르면서 대부분의 시장참가자가 달러를 사려고 하는 반면, 개입을 대행하는 한두 은행에서만 팔자 주문을 내기 때문.

이날 오전 개입으로 1358원까지 올랐던 환율은 5분만에 16원이 떨어진 1342원으로 내려앉았다. 외환은행 이정태딜러는 당국의 개입이 아니고는 이렇게 내려갈 수 없다. 딜러들도 이 때부터 긴장해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고 전했다.

오후들면서 시장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역외선물시장(NDF)에서 외국계 세력이 한은이 내놓은 달러를 계속 사들였으며 정유사 등 수입사들의 달러수요도 적지 않았다. 오후들어 환율이 1350원선을 위협하자 2차 개입이 단행됐다. 장 막판에는 외국계은행과 국책은행 등 3∼4곳에서 한꺼번에 개입물량이 나왔다.

이날 종가는 전날보다 23.1원이 내린 1342.1원. 외환당국과 시장 사이에 벌어졌던 치열한 공방전은 일단 외환당국의 승리로 끝났다. 달러를 사들였던 일부 은행과 외국의 역외시장 참여자들은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고 시인했다. 그러나 딜러들은 당국의 개입이 성공했느냐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당국이 의도했던 것처럼 원-달러환율이 1340원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았기 때문.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장 막판에 당국이 1340원선을 깨뜨리기 위해 물량을 쏟아냈지만 매입세력이 모두 받아가면서 1340원이 지켜졌다 며 이는 이번주 외환당국과 시장간의 힘겨루기가 녹녹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 이라고 말했다.

특히 스탠더드앤 푸어스(S&P)가 6일 일본 경기부양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 엔-달러환율의 상승세가 이번주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외환당국은 무척 힘겨운 싸움을 해야할 전망. 어쨌거나 외환당국은 전철환(全哲煥) 한은 총재가 환율이 안정되지 않으면 물가상승률이 5%를 넘을 수도 있다 고 말한데서 보듯 환율잡기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