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4월 6일 18시 5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이 곳으로 가는 문경 새재에서는 연풍 마을이 멀리 내다보인다. 조선 후기 불세출의 화가인 단원 김홍도가 마지막 벼슬로 현감을 지낸 곳이다.
이 책의 ‘중턱’에서 만나는 ‘봉암사’ 편은 의미심장하다. 절에 얽힌 사연과 김홍도를 떠올린 대목에서 10여년 간 전국의 사찰과 자연을 화폭에 옮겨온 저자의 집념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95년 5월 처음으로 봉암사를 찾았을 때의 에피소드. 저자가 밑그림을 위한 자료를 챙기기 위해 석가탄신일 행사로 바쁜 한 스님의 길을 막고 도움을 청했다. 이에 스님은 “청정 도량을 세상에 알리지 않는 것이 보시행이요, 등(燈)을 다는 마음입니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희양산의 밤’ ‘희양산 봉암사’ 등 어렵사리 그린 그림과 함께 “스님은 형(形)을 버리라 이르고, 붓을 든 이는 상(像)을 좇고 있으니”라며 이 때의 막막한 심경을 밝혔다.
이 책은 한국화가 이호신이 사찰과 이를 감싸안은 자연을 수묵화와 글로 담아낸 화첩 기행이다. 충남 서산의 개심사, 경북 영주의 부석사, 전남 순천의 선암사 등 전국 40여 개 대찰(大刹)이 스케치 그림과 수묵화를 통해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서 헌칠한 자태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주목할 것은 저자가 절이 아닌 전경(全景)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는 점이다.
여러 차례의 답사여행을 통한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 절 건너편 깊은 산 속에 화구를 내려놓는 다리품이 없었다면 절과 이를 둘러싼 자연의 본색이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수묵화와 함께 절에 얽힌 사연, 저자의 심경이 가미된 글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