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노숙자 이해하지만 해도 너무해요"

  • 입력 2001년 4월 5일 19시 38분


‘노숙자’들이 ‘부랑자’로 변하고 있다.

지하철역이나 보호시설에서 겨울을 보낸 노숙자들 중 일부가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길거리로 나서 60∼70년대에 있었던 부랑자의 행태를 보이며 시민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주고 있다.

▼3월 현재 3313명 집계▼

실태:서울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부근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씨(55·여)는 하루에 3, 4명씩 노숙자가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 초에는 만취상태로 들어와 “소주 2병만 내놓으라”며 1시간이나 행패를 부리는 노숙자를 돌려보냈다가 “폭행을 당했다”는 음해신고를 당하기도 했다. 김씨는 “동정을 거절하면 ‘장사하기 싫으냐’고 협박하고 행패까지 부려 무섭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25일 서울역 앞에서는 노숙자 강모씨(46)가 택시를 기다리던 40대 여성의 몸을 더듬다 경찰에 잡혔다. 그러나 강씨는 파출소에서 “없는 사람 무시한다”며 신고여성과 경찰관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관의 팔을 물어뜯기까지 했다.

서울역 역전파출소 오호석(吳浩錫·43) 경장은 “노숙자들은 24시간 취해 있는 알코올중독자들이 많고 대부분 ‘막가파’여서 파출소에 끌려와서도 행패를 부린다”며 “범칙금 납부고지서를 발부해봐야 경찰관이 보는 앞에서 찢어버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종로구 안국동에서 불교용품을 판매하는 김모씨(45)는 “종교용품을 파는 상점들은 신자들이 많기 때문에 구걸하는 노숙자들의 집중 공략대상인데 최근 들어 구걸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자활프로그램등 온정 필요▼

줄지 않는 '길거리 노숙자':그동안 정부와 시민단체 종교단체의 노력으로 서울시내 전체 노숙자 수는 줄었으나 알코올중독자가 늘고 자활의지도 잃어 이들의 합숙소인 ‘쉼터’를 찾지 않고 술과 구걸에 의지하는 ‘길거리 노숙자’는 줄지 않고 있다.

서울시 노숙자 대책반에 따르면 98년 4월 575명이던 서울시내 길거리 노숙자는 99년 3월 325명, 2000년 3월 309명에서 올 3월 다시 325명으로 증가했다. 반면 쉼터에 수용되어 있는 노숙자는 올 3월말 현재 3313명으로 집계됐다.

대책은 없나:노숙자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실무자들은 길거리 노숙자들에 대한 시민불편을 이해하면서도 아직은 온정을 쏟을 때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 노숙자대책반 김홍기(金鴻起) 자활지원팀장은 “보기 싫은 사람이라고 모두 강제 격리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이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당신에겐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온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노숙자 쉼터 관계자는 “자활프로그램 공공근로사업 등에 한 번이라도 참여한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혜택을 주는 것도 길거리 노숙자를 줄이는 방법”이라며 “근로경험이 반복되면 삶의 의지도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