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아름다운 병원' 은혜산부인과 장부용원장

  • 입력 2001년 4월 5일 18시 59분


◇여성민우회 선정 '아름다운 병원'◇

‘한 사랑이 태어나므로

크고 넓고 하나인 사랑이 태어나므로

다 놓아버리고/한참은 더 아파야 하나 보다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시인 김지하는 ‘한 사랑이 태어나므로’에서 출산의 고통과

신비를 이렇게 노래했다. 아기를 낳는 것은

여성의 몸에 우주를 잉태해 오롯이 빚어내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대부분의 예비엄마들, 그리고 적지 않은

의사들은 출산의 과정을 두려워한다.

지난해 여름엔 좀 줄어들었다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분석한 우리나라의 제왕절개 분만율은 99년 43%로

세계최고를 ‘자랑’했었다.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자리잡은 은혜산부인과는

‘웬만하면’ 제왕절개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통에 못이겨 수술을 해달라고 호소하다가는

후덕한 인상의 장부용(張富蓉·48)원장에게

야단맞기 딱 알맞다. 예외의 경우는 의학교과서에 나오는,

아기와 엄마의 생명이 위험할 때 뿐.

지난해 제왕절개율이 전국 최저수준인 17.9%인 이 병원을

최근 한국여성민우회는 ‘아름다운 병원’으로 뽑았다.

◇출산고통은 귀한 경험, 아픔겪어야 엄마 성숙◇

“우리 몸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분만이 가장 적합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죠. 출산의 고통도 엄마가 겪어봐야할 귀한 경험이라고 믿구요. 인간의 의지나 한계를 초월하는 그런 아픔을 겪어봐야 엄마도 성숙해집니다.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할 때면 아기를 꺼내들면서도 ‘이건 아니잖아’ 싶어요.”

장기없이 맑은 얼굴의 장원장이 조용조용 말했다. 평생 한번도 언성을 높여보지 않은 듯한 목소리였다. 나직하고 부드러운 말투지만 ‘확신범’처럼 신념에 차있었다. 하기는 제왕절개로 태어나는 아이보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의 지능이 일반적으로 더 높다는 것은 산과교과서에 나와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99년 9월 국내 처음으로 수중분만을 시작했는데 물속에서 태어난 아기는 순하고 젖도 잘먹더라고 했다.

병실 16개의 작은 병원을 꾸려가는 장원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엄마와 아빠가 주인공인 축제처럼 분만을 이끌고 의사는 일종의 ‘분만 프로듀서’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다.

아기낳을 날이 일주일쯤 앞으로 다가오면 그는 예비엄마 아빠에게 ‘분만 때 병원에서 해주기를 원하는 것’을 써오라고 한다. 수중분만을 하는 방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거나 조명을 조절해준다. 분만대기실에 엄마와 아빠가 함께 진통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엄마가 일반 분만실에 들어갈 때도 아빠가 반드시 동참하도록 한다.

“아기가 출생해서 누구를 보고 어떻게 접촉하는가에 따라 가슴과 가슴이 본드처럼 달라붙는 과정이 이루어집니다. 영어로 본딩 프로세스(Bonding Process)라고 하는데, 학자에 따라 태어난지 3시간이나 6시간 사이, 또는 사흘안에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된다고 하지요. 따져보면 그 시간이 바로 병원에 있는 시기가 아닌가요. 태어나자마자 의사 손에 거꾸로 들려 울음을 터뜨리는 것보다는 엄마 아빠의 따뜻함을 느끼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장원장은 아기가 태어나면 핏덩어리 그대로 엄마 배위에 올려놓는다. 아이가 꼬물거리며 엄마를 느끼는 것을 보면서 아빠가 따뜻한 손길로 탯줄을 잘라주도록 한다. 사실 모든 아빠들이 이 과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하는 사람도 있지만 출산의 그 ‘원초적 모습’에 거부감을 갖는 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아기낳는 과정이 의료진 중심이 아니라 엄마와 아기, 그리고 아빠 위주여야 한다는 장원장의 생각은 확고하다.

“‘부드러운 탄생’‘폭력없는 출산’이 우리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폭력범죄자의 70% 이상이 난산으로 태어났다는 외국의 연구가 있어요. 요즘 심각한 청소년문제나 가정해체 현상도 아기탄생 때 너무 거칠게 취급한 영향도 적지않다고 생각해요. 아기와 엄마, 그리고 아빠가 행복한 출산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작은 사회적 역할이 아닐까요.”

새로운 출산문화를 만들어가려는 그의 노력은 10여년 전 서사모아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어려서부터 의료선교가 꿈이었던 남편을 따라 89년 서사모아 국립병원에서 3년간 지켜본 그 나라의 출산은 아름다운 가족축제였다.

그곳 중상류층과 외국공관원 가족들은 집에서 아기낳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만삭의 아내와 남편은 남태평양의 코발트빛 바다가 보이는 집밖을 가만가만 거닐다가 산통이 오면 현관 난간을 붙잡고 아픔을 견뎠다. 남편은 아내의 등과 배를 마사지해주고, 의사는 지켜만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다 아기가 나올 때쯤 아내는 가족들이 있는 집안으로 들어가 눕지도 않고 기대앉은 채로 아기를 쑥 낳았다(사실 이런 자세는 산모는 편하지만 의사에게는 괴로운 분만형태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허리를 굽혀 처치를 해야 하므로).

“그때까지만 해도 현대식 의술에 익숙해있던 저에게는 충격이었어요. 출산이라는 것이 의사가 주도하지 않고도 가족과 함께, 저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거죠.”

그곳 사람들의 가족과 행복에 대한 개념도 우리와는 달랐다. 보통 예닐곱명씩 갖는 아이들, 여기에 부모없는 아이들을 서너명씩 입양해 자연스럽게 키웠다. 가난 속에서도 없으면 덜먹고, 신이 없으면 맨발로 다니며, 아등바등하지 않고 넉넉하게 살았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에 따라 삶이 저렇게도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다. 96년 개업을 하면서 이같이 축제처럼 이뤄지는 분만을 도입했다. 엄마와 아기를 강제로 떼어놓는 신생아실은 아예 없다. “제왕절개도 거의 안하고, 낙태수술도 안하면서 병원이 운영되느냐”고 물었더니 장원장은 미소만 짓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그가 20년 산부인과의사 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 낙태수술이다. 82년 산부인과 전문의를 따고 바로 개업하지 않은 이유도 “낙태를 하지않으면 돈벌이가 안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겁이 났기 때문이다. 병원을 옮길 때마다 이력서에는 “저는 낙태수술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추가항목이 들어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명이니까”.

“수정란이 엄마몸에 착상되면서부터 생명이 시작된다고 확신하거든요. 우리 모두 시작할 때는 점에 불과한 생명체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작은 짐승 하나도 무서워서 못죽일 것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뱃속에서 자라는 생명을 죽일 수가 있나 싶어요.”

물론 임신중절을 원하는 사람마다 이유가 있다. “아파트를 장만한 다음에 낳겠다”“아이가 둘이나 있으니까…” 등등. 그때마다 장원장은 동전 뒤집기 식으로 생각하라고 달랜다. “아기가 있다고 집장만을 못하느냐. 조금만 늦추면 된다” “둘도 키우는데 셋이라고 못키우냐”하고. 미혼모가 찾아와도 마찬가지다. 원치 않던 아기를 가진 엄마라 할지라도 일단 낳은 뒤 후회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해준다.

원장 자신도 1남2녀를 키우다 뜻밖의 임신으로 가진 막둥이가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다. 막내딸은 위로 세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재미와는 비교도 안되는 기쁨과 위로를 주고 있다. 어찌나 자신있게 말하는지 열두살짜리 딸을 두고 있는 기자도 하나 더 낳을까 싶어질 정도였다.

요즘 산모들 가운데 갓난아기가 딸이라는 이유로 실망하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아들이냐, 딸이냐”를 먼저 묻고 친정어머니는 “산모가 괜찮으냐”고 묻는 풍경은 여전하다.

장원장의 네 자녀를 모두 키워준 사람도 친정어머니다. 기자와 인터뷰하느라 장원장이 점심을 거르자 일흔다섯살의 어머니는 김밥을 사와서는 “배고프겠다. 어서 먹어라”며 다큰 딸 걱정을 했다.

◇행복한 출산을 위한 장원장의 5가지 조언◇

1. 태교는 임신을 안 그날부터 시작한다.

“수정란이 엄마 몸에 자리잡은 순간부터 생명은 시작된다. 사랑해줄수록 당연히 태아도 그것을 느낀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2. 분만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아기는 태어나기 마련이다. 아기도 나름대로 용을 쓰고 있다. 자연분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면 침착하게 출산의 과정을 음미하게 된다.”

3. 분만의 고통에 대해 겁먹지 않는다.

“진통은 자궁이 수축되는 것. 아기 몸을 부드럽게 마사지해서 태어나기 좋게, 호흡하기 좋게 해주는 과정과 연결된다. 진통은 인간이 신의 도움없이 스스로 종족을 유지해가도록 만들어놓은 절묘한 법칙.”

4. 난산을 피하기 위해 엄마도 살찌지 않도록 조심한다.

“아기가 3kg 안팎이어야 엄마도 편하고 아기도 쉽게 태어날 수 있다. 아기 체중이 엄마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기름진 것을 먹거나 퍼지지 말도록. 적당한 운동과 활동은 출산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5. 어려운 일이 닥치면? 분만의 순간을 기억하자.

“참을 수 없는 통증 앞에서 사람은 무력해지기 마련. 하지만 모든 고통에는 끝이 있다. 출산의 신비가 이를 말해준다. 게다가 아기라는 축복까지 얻지 않나. 어떤 진통이라도 아름다운 열매를 가져온다는 것을 기억하면 위기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다.”

◇장부용 원장은…◇

▽1953년 광주 출생

▽1972년 서울 숙명여고 졸업

▽1978년 전남대의대 졸업

▽1982년 전주예수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 취득

▽1982―84년 대구 가톨릭의대병원 산부인과과장

▽1985―88년 전주 예수병원 산부인과과장

▽1989―92년 서사모아 국립병원 산부인과과장

▽1993―95년 경기 부천 세종병원 산부인과과장

▽1996년 서울 은혜산부인과 개원

<만난 사람=김순덕차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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