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창간81주년]권력과 언론

  • 입력 2001년 4월 1일 18시 52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훌륭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내가 프리덤하우스 대표로 있을 때 그의 납치사건이 발생했고 우리는 그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후에 나는 김대통령이 주도적 역할을 한 아시아태평양 민주지도자포럼(FDL―AP)의 설립에도 관여했다. 민주지도자포럼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김 대통령이 쏟은 정치적 노력의 결실이었다.

김대통령의 업적은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인정받았다. 노벨상은 김대통령이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평화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것에 대한 신뢰의 표시이기도 하다.

지난 10여년간 프리덤하우스는 한국 국민이 향유하는 자유가 크게 향상됐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프리덤하우스가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정치적 권리와 시민의 자유에 대한 조사에서 한국의 상황은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통제시대 지났는데▼

한국은 1973년의 조사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국가로 분류됐다. 정치 체제가 극히 억압적이었고 언론은 정부의 통제 하에 있었다. 75∼87년 상황이 크게 호전되면서 프리덤하우스는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87년 이후 선거제도와 사회 전반에서 크게 개선이 이뤄지면서 한국은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됐다. 지난 14년 동안 종종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했지만 한국은 계속 ‘자유로운’ 국가의 범주에 속했다.

한 국가에서 자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려면 언론이 정부에 의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정부는 언론이 정책을 정확하게 국민에게 전달하고 인쇄와 배달 체계를 공정하게 운영하도록 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정부는 또 언론이 정부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더라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취재와 보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정부와 언론 모두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정부든, 심지어 가장 민주적인 정부라 하더라도 발을 헛디디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나는 한국이 비민주적인 통치 하에 있을 때 수차례 한국을 방문해 언론자유의 수준을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 언론사 간부와 언론담당부처 관리들은 매일 정부가 언론사 간부들에게 전화를 했다고 고백했다. 언론은 무슨 기사를 쓰고, 어떻게 쓰고, 심지어 지면에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가에 대해 충고 내지는 지시를 받았다. 다행히 그런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정부는 좀더 미묘한 방식으로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과 같은 자유시장경제 사회에서는 신문이 재정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신문의 경제적 자유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검열관의 보도통제 만큼이나 위험하다. 언론의 경제적 자유에 대한 위협은 기사에 영향을 미치는 고도로 정교한 방법일 수도 있다. 이는 자유주의 사회의 안정에 위험을 초래하는 일이다.

한국의 주요 신문 발행인들은 경제적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경제적 자유에 대한 도전은 바로 언론의 자유에 대한 도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비판적 논조 억제위한 조치▼

20여개의 신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세무조사는 바로 이 같은 위협에 해당된다. 국세청은 언론사 세무조사가 기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정기적인 조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세무조사라면 언론은 정부 비판에 대한 보복으로 간주할 수 있다. 세무조사는 언론의 재정 운영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지탱시키는 광고주의 역할까지 위협하게 된다.

그동안 정부관리들이 언론을 비판해온것이 세무조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언론은 세무조사가 비판적인 논조를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조치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 같은 경제적 위협은 언론통제의 효과를 내포하고 있으며 통제가 실제 존재하든 언론이 단지 그렇게 느끼든 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모든 기관과 개인은 정당하게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고 세무조사의 권한을 남용한다면 민주사회 건설에 해가 될 뿐이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바라보는 방관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정부와 언론계 지도자들이 허물없는 대화를 통해 불신을 해소하고 상호간에 신뢰를 다지길 바란다.

레너드 서스맨(프리덤하우스 수석연구원·컬럼비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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