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3월 30일 19시 01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이제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받게 되는 인상 중의 하나는 ‘덜컥거림’이다. 그의 소설은 결코 편안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포장이 안된 길을 낡은 차를 타고 달릴 때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문장은 이물감을 안겨주고, 구성은 일반 소설 문법에서 한참 벗어나 있으며, 인물은 비상식적인 행동과 불합리한 사고로 읽는 사람을 예측불허의 긴장 상태에 몰아넣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소설은 우리가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 품고 있는 다양한 환상들에 대한 은밀한 배반과 치열한 탈주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중도에서 멈출 수 없는 흡인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어딘가 조금 느슨하고 빈틈이 있는 것같은 인상을 주는 그의 소설이 실은 이완과 집중의 적절한 조율로 이루어진 정교한 세공품이라는 사실에 눈뜨지 못한다면 그의 소설 읽기가 진정 성공적이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작가가 오랜만에 펴낸 창작집 ‘독충’에 실려 있는 작품들에서도 세상과 인간과 이념에 대한 극단적인 냉소, 문학을 정신적 소비품의 일종으로 만드는 세태에 대한 저항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저승사자라는 비현실적인 존재가 출현하는 일종의 괴담으로 출발해서 중년에 이른 남녀의 두서없는 연애담으로 넘어가는 ‘담배의 해독’, 초등학생 시절 존경하던 스승에 대한 추억과 한때 사랑했지만 현재 처지가 엇갈린 두 남녀의 일회적 만남이 교직돼 그려진 ‘독충’, 죽은 개의 환영을 좇아 예정에 없는 고향길에 올랐던 주인공이 교통사고까지 당하는 ‘뻐꾹아씨, 뻐꾹귀신’ 등.
여기 수록된 6편의 중단편은 현실 관념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낯설고 기이하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없이 심상하게, 심지어 권태까지 느껴지는 무연한 어조로 전달함으로써 ‘이제하적 세계’ ‘이제하적 풍경’을 구축해보이고 있다.
거기엔 “김밥에는 단무지 곁들임이 제격의 반찬이라고 못박아놓는 세상의 저 고정관념”(‘금자의 산’)에 대한 강렬한 부정과 “뒤죽박죽 가치관도 질서도 없이 수세미처럼 엉켜버린 바깥 사회정세”(‘어느 낯선 별에서’)에 대한 도저한 비판정신이 숨어 있다.
‘어느 낯선 별에서’의 화자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외잡하고 살벌한 어떤 거짓의 냄새”로 가득차 있으며 우리 모두는 “조만간 불타 사라져버리고 말 보잘 것 없는 작은 혹성”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처지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뻐꾹아씨, 뻐꾹귀신’에서 고속도로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정육점 대형트럭이 뒤집혀 “뎅겅뎅겅 잘린 채 허공이나 땅으로 얼굴을 처박고 있는 자욱한 돼지머리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리는 환영을 그린 압도적인 대목은 현실에 대한 이 작가의 조소와 부정이 어디까지 이르렀나 알아볼 수 있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시인 소설가이자 화가이며 작곡가이고 가수이기도 한 전방위적 예술가가 오랜만에 펴낸 이 노작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부조리함’을 발견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분명 행복한 경험이기도 하다. 이제하의 소설에 의해 우리 문학은 이 시대의 속악함과 실존의 불합리함에 대한 뛰어난 초상화를 하나 더 간직하게 되었다.
남진우(시인·문학평론가)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