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너스 베티>TV스타와 사랑에 빠진 그녀

  • 입력 2001년 3월 5일 18시 44분


SF영화 속에서 서로 다른 차원의 현실이 만나는 순간은 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백 투 더 퓨처’에서 처럼 과거속에서 현재의 존재가 지워져가기도 하고 ‘매트릭스’에서 처럼 현실이라 믿었던 의식속 세계가 붕괴하기도 한다.

‘너스 베티’(Nurse Betty)는 바로 그 두 개의 현실이 부딪히는 순간의 섬광 같은 폭발을 SF적 상상력이 아닌 번뜩이는 블랙코미디로 그려낸다. 이 영화에서는 텔레비전 연속극의 달콤한 가상현실과 실제의 고단한 현실이 부딪힌다.

베티(르네 젤위거)는 간호사가 되려던 꿈을 접고 자동차판매원과 결혼해 살고있는 캔자스 한 식당의 순박한 여종업원. 생일날 남편에게서 선물은 커녕 외식 대접도 못받는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TV 연속극 ‘사랑하는 이유’의 주인공인 미남 의사 데이빗(그렉 키니어)을 보는 것.

데이빗에 대한 동경으로 TV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던 그녀는 우연히 마약밀매에 끼어든 남편이 청부살인업자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는 것을 목격하고 정신착란에 빠진다.

그때 연속극에서 데이빗이 속사이던 대사, “뭔가 특별한 일이 펼쳐질거요”는 그런 베티에게 마법의 주문이 된다. 자신을 과거 데이빗의 약혼녀라고 믿게된 베티는 꿈속의 남자를 찾아 로스앤젤레스로 떠난다.

베티의 남편을 살해한 찰리(모건 프리먼)와 웨슬리(크리스 락) 부자는 베티의 자동차 짐칸에 실린 마약을 추적하며 그녀에 대해 부풀어진 온갖 허상에 빠진다.

관객은 베티가 데이빗역의 실제 배우 조지를 만나는 순간 황당한 몽유병에서 깨어나리라 예상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진행된다. 조지는 수년전 대사까지 줄줄 외워대며 사랑을 호소하는 그녀에게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에 직접 출연시키려 한다.

파열의 굉음이 울리는 때는 베티가 진짜라고 믿었던 연속극의 무대에 서면서 그 허구성을 깨닫는 순간. 그런 그녀를 찾아낸 찰리 부자도 그 모든 소동이 단지 연속극때문이란 것을 알고 아연실색한다.

바로 그 순간 허상으로 가득찬 연속극의 현실과 추잡한 실제의 현실은 등가의 존재로 순식간에 상호교환된다. 현실의 유혈극은 킬러들의 죽음이란 권선징악적 연속극적 결말을 맺고 연속극의 허상에서 깨어난 베티는 실제 연속극의 주인공이 된다.

탄탄한 각본으로 지난해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고 ‘제리 맥과이어’에서 대책없이 순박한 미소 하나로 톰 크루즈를 사로잡았던 르네 젤위거는 올해 골든 글로브상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탔다. 실제 TV연속극인 ‘사랑하는 이유’에서 간호사로 출연 중인 이승희도 출연한다. 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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