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파 낭비한 두 시간

  • 입력 2001년 3월 2일 01시 52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어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즉 TV방송의 황금시간대인 두 시간 동안 집권 후 네 번째 ‘국민과의 대화’를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질문과 답변 모두 상식적이고 상투적인데다 그나마 이미 대부분 알려진 내용들이어서 TV 3사가 공동 중계로 귀중한 전파만 낭비했다는 느낌이다.

국정 전반에 대한 국민의 궁금증을 푼다는 프로의 기본 성격에서부터 깊이 있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고, 방송 특성상 어느 정도 연출은 불가피하다고 하겠지만 진정 국민이 알고 싶어하고, 대통령과의 간접 대화를 통해 희망을 가질 만한 알맹이 있는 내용이 거의 없다는 것은 유감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말 ‘의원 꿔주기’로부터 시작된 여야(與野) 대치 정국에 대한 책임감 있는 해명, 앞으로 야당과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인지, 앞으로 정치 개혁은 어떻게 할 것이며, 노벨상 받으러 가기 전에 약속했던 국정 쇄신의 큰 그림은 어떻게 된 것인지 등 국민의 관심이 쏠린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는 아예 질문조차 되지 않았다.

또 경제와 교육 보건복지 문제 등에 있어 그간의 정책 혼선 및 개혁 미진에 대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설득력 있는 해명과 비전 제시도 미흡했다. 그저 ‘그동안 정부도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노력하겠다’는 식이어서는 국민의 감동을 얻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현재 우리 사회 내부에 깔려 있는 ‘남남(南南) 갈등’의 심각한 이념적 분열 현상과 그것을 치유할 방안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본질적 위기는 지역간 계층간 화해와 통합으로 국민적 에너지를 한데 모으기보다는 갈수록 날이 선 듯한 적대적 대립과 갈등, 분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의 논리에 집착하는 여권의 ‘힘의 정치’가 그러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김대통령은 이러한 문제와 관련한 국민의 우려에 대해 국민과 함께 고민하고 국민을 안심시키려 애쓰는 모습이나마 보여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형식적인 국정 홍보에 그쳐서야 국민에 어떤 희망도 안겨주기 어렵다.

아무튼 MBC SBS 두 방송사 노조가 방송전에 합동중계방송 취소를 요구했었듯이 이러한 정도의 내용 없는 ‘국민과의 대화’로 국민의 방송 채널권을 빼앗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