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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1일 14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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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구 소련권의 많은 여성들이 돈벌이를 위해 해외 매춘에 나서고 있는 현실에 대해 당사국 국민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경제난과 사회불안에 따른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라는 자괴감을 보이기도 한다.
이른바 ‘인터걸’로 불리는 이들 여성은 한 해 수십만명씩 유럽과 미국 중동 아시아 등의 매춘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 조직범죄단인 마피아까지 개입돼 인권이 유린되기도 한다.
▽실태〓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나스탸(21)는 1년 동안 스페인에서 인터걸로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모스크바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직장을 구하지 못하다가 해외에서 일할 무용수를 모집한다는 인력송출회사의 광고를 보고 단짝 친구와 함께 1999년 스페인으로 갔다. 말이 무용수지 현지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떠나기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돈도 못 벌고 생활하기도 힘들었다. 당초 한달에 1500달러는 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그 절반도 벌지 못했다.
귀국 후에도 모스크바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매춘을 하고 있는 그녀는 최근에야 자신은 운이 좋았다는 걸 알게 됐다. 인력회사를 가장한 마피아에 걸려들어 돈을 벌기는커녕 귀국조차 못한 채 성적 노예생활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구조네트워크(GSN)에 따르면 1989년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부터 인터걸들이 해외로 나가기 시작해 지금은 전세계 매춘시장에 이들이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마피아가 조직적으로 인력송출과 매춘사업에 뛰어들면서 그 수가 부쩍 늘어나 최근 몇 년 사이엔 한 해에 수십만명씩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마피아는 연간 7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응 및 대책〓인터걸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당사국들은 이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데부슈카(젊은 아가씨)가 무기, 석유와 함께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수출품”이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돌면서 차츰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러시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영화감독 출신의 스타니슬라프 고보루힌 전 하원의원은 “‘여성수출’은 최악의 범죄”라며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고 나섰다.
또 최근 전 세계 여성 대표들은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와 러시아의 무르만스크 등에서 모여 ‘인신매매 및 불법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당사국은 물론 인터걸을 ‘수입’하는 국가들도 이에 협조해 줄 것을 촉구했다.
국제인권단체와 유럽연합(EU)은 인터걸 문제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유괴되거나 납치돼 여기저기로 팔려 다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도 이런 여성들을 구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성을 위한 여성’과 ‘신뢰의 전화’ 등의 단체들이 최근 속속 생겨났다.
하지만 아직 당사국 정부들의 관심과 대책 마련은 미흡한 실정.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는 매춘범죄조직의 소탕을 공언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당사국 정부들은 자국 국민인 피해 여성들을 보호할 의지조차 없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최근 터키로 팔려가 매춘을 강요당하던 한 우크라이나 여성이 겨우 탈출해 이스탄불 주재 자국 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호소했으나 대사관 직원이 “근무시간이 지났다”며 쫓아낸 사례가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여성단체 등은 아예 “해외에서 긴급 구조가 필요할 경우 자국 대사관에 호소하지 말고 차라리 그 나라의 인권단체나 사회단체를 찾아가라”고 권고할 정도이다.
오랫동안 인터걸 문제를 다뤄온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알렉산드로프는 상당한 자괴감을 보이고 있다.
그는 “납치나 유괴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해외매춘을 택하고 있다”며 “심각한 경제난과 사회혼란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인터걸의 물결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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