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송남헌선생 추도]겨레의 독립과 통일에 바친 한평생

  • 입력 2001년 2월 21일 18시 30분


경심 송남헌(耕心 宋南憲)선생께서 지난해 광복절에 우리 후배들과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우사(尤史) 김규식 전집’이 나오는 것에 대해 자신의 삶의 마무리를 짓는 표현을 하시더니 끝내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일제 강점과 분단의 민족사에 자주와 통일의 영광을 안기려고 일생을 고난 속에서 분투하시다가 “격동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보람찬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언제나 좌절로 끝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하시면서 한국 현대정치사의 고전적 증언인 ‘해방3년사’ 등을 남기셨습니다.

이 기록은 우리 민족이 함께 좌절한 자주 통일 민족정부 수립을 향한 눈물의 기록입니다. 선생께서는 이 책으로 재작년 ‘심산상(心山賞)’을 수상하시면서 “그것은 내 청춘의 열광적인 기록이기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일제강점하에 해방의 소식을 먼저 알리려다 ‘경성방송국 단파사건’으로 옥고를 치르시는 것을 시작으로 민족의 운명에 일생을 투신하셨습니다.

해방정국의 극단적 좌우대립 가운데에서 가장 이성적 정치지도자로 행동하신 우사 김규식 선생을 모시고 통일민족정부를 세우기 위해 힘을 기울이셨으며, 분단의 비극을 막아보려고 38선을 넘어 남북협상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연장에서 해방된 조국에서 이승만 정부에 의해 국가보안법 불고지죄 위반으로 다시 투옥됐습니다.

4월혁명 뒤 민주사회주의세력의 정치세력화에 헌신하시다가 다시 군사혁명 뒤 구속돼 조영수 민족일보 사장이 사형장으로 가는 늠름한 모습을 철창으로 목격하기도 하셨습니다.

선생은 정석해 권오돈 박진목 선생 등과 함께 ‘민족통일촉진회’ ‘민족정기회’를 결성했다가 유신으로 해산당했지만, ‘민족정기회’를 재건해 강신옥 변호사 등 후진에게 물려주셨습니다.

선생은 일생 민족적 양심과 양식(良識)에 충실한 만큼 세속적 명리로부터는 외면당했지만 고아한 품성과 내면의 열정, 그리고 지성적 자세와 인도주의적 정치 이상은 높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학자들로부터는 현대정치사의 공백을 메운 선구적 저술가로, 민족 통일운동가로부터는 불굴의 선배로, 진보적 이상주의자로부터는 한국의 진보주의를 고난 속에서 지켜온 투사로 존경받았습니다.

이제 선생께서는 핍박과 고통이 없는 하늘 나라에서 우리 겨레가 통일 민족국가를 이루고 민족적 우애와 기상 속에서 행복을 누리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김도현(金道鉉·민족정기회 간사·전 문화체육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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