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칼럼]박세영 서치캐스트 대표/컴퓨터 세대와 대화하기

  • 입력 2001년 2월 12일 11시 25분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집에 전화기가 들어왔다. 그 전화기란 물건은 초등학교 6학년이 만지기에는 너무 귀하고 큰 물건이었다.

항상 그 전화기를 만지지 못해 안달이었고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에게 전화기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전화기라는 물건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오는지 매우 궁금하였으나 그 물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많은 식구가 사는 집에서 어린 꼬마가 전화기란 물건을 만지는 것은 마치 보석으로 공기놀이를 하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기회가 왔다. 집에 아무도 없는 날 전화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신비의 물건을 합법적으로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여 여보세요, 지 지금 안계시는데요.". 그것이 전화를 만져본 첫 경험이었다. 그 황홀했던 경험은 온 동네 꼬마들에게 큰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은 요즘 아이들에게 비하면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거의 태어나면서부터 전화기를 장난감 삼아 논다. 겨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만 되면 "여보세요, 안 계시는데요"를 할 줄 안다.

그만큼 문명의 이기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그 이유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물건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들과 항상 함께 존재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 물건들을 다루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들에 대한 우리 아이들의 친밀감은 '컴퓨터'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처음 컴퓨터를 본 것은 대학을 들어가서이다. 커다란 방에서 에어컨을 독차지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출입도 금지한 채 위풍당당하게 거만을 떨던 제 3 세대 컴퓨터였다.

조그만 구멍으로 키펀치한 카드를 집어넣으며 그리도 오만하던 오퍼레이터 아가씨한테 비굴한 웃음을 짓게 만들던 그 물건이 바로 컴퓨터였다. 나는 컴퓨터로 영화를 보거나 동영상 비디오를 보는 것이 아직도 서먹서먹하다. 무언가 어색하고 쉽지 않다.

그러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우리 아이들은 그것으로 숙제도 하고 친구와 편지도 주고받으며 핑클이 추는 춤도 보고 노래도 듣는다. 이런 아이들은 하루라도 인터넷이 끊어지면 속상해하고 답답해할 것이다.

이런 차이는 비단 컴퓨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동 전화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40대 어른들은 단지 걸려오는 전화를 받거나 전화를 걸 때 사용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40대 어른들이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기능을 매일 사용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컴퓨터나 이동 전화기 같은 물건을 옆에 두고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40대 어른이기는 하지만 컴퓨터를 전공하는 나는 비교적 문명의 이기들과 가깝게 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나에게도 우리 아이들과의 세대간 격차는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컴퓨터와 많은 거리를 두고 사는 대부분의 구세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컴퓨터 게임에 사용되는 무기를 사기 위해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는 우리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부모들에게 컴퓨터를 배우라고 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일류 대학을 나온 부모라도 컴퓨터 때문에 갑자기 바보가 돼버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화하기 힘든 자녀들과의 대화는 컴퓨터 때문에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은 항상 세대간의 격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부모들이 우리가 "한밤의 음악편지"를 듣기 위해 사달라고 졸랐던 워크맨이 어떤 물건인지 몰랐어도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지 않았듯이 우리 아이들도 우리가 인터넷 컴퓨터 게임을 모른다고 우리를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필요한 것은 우리의 부모들이 우리에게 매일 "저녁은 먹고 다니냐 ?"고 물었듯이 우리도 우리 아이들에게 매일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e-mail을 보낼 수 있으면 그러한 세대 격차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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